조용하던 부산의 한 마을에 '색(色)'을 입히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부산 사하구 감천2동에 ‘감천문화마을’이란 곳 입니다.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벽화가 그런 변화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라고 하는데요. 담벼락과 길거리, 심지어 대중목욕탕에도 색을 입혀 마을 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지금은 부산 여행의 필수 방문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 벽화마을의 명소 감천문화마을 ⓒ 감천문화마을 김기덕 님 >
마을 벽면 구석구석에 그려 넣은 작은 그림들은 평범했던 부산의 한 작은 마을을 이내 전국의 손꼽히는 예술 마을로 변모시켰습니다. 아트숍, 까페, 사진갤러리 등 굽이진 길 구석구석마다 다양한 문화로 채워졌고, 이 오밀조밀한 예술 마을을 즐기고자 전국 각지에서 전년대비 두 배 이상의 관광객이 마을을 찾았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의 변화 시작은 바로 ‘벽화’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벽화는 현재진행형으로 변모하는 예술입니다. 벽화마을의 발전은 단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고대부터 이어져 온 예술입니다. 고대의 고구려 고분벽화와 중세의 교회벽화, 근대의 멕시코 벽화운동과 민중벽화까지, 벽화는 주민의 삶을 투영하는 예술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벽화는 그 시대를 살던 이들이 남긴 현재진행형의 기록이란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글로 기록된 추상적인 전달보다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남긴 벽화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주요한 연결고리이기도 합니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미술계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본래 고분벽화는 죽은 자를 위한 예술로, 그 주제는 크게 인물 풍속과 장식, 사신도로 구분됩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10,000기 이상의 고구려 고분 중 90기 정도만이 벽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분들과 벽화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고구려의 생활풍습과 풍속연구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 ⓒ 네이버 캐스트>
고구려 고분벽화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덕흥리고분 - 13군태수 ⓒ 고구려산책 | 1) 주제 : 인물 풍속 → 장식무늬 → 사신 2) 화풍과 채색 : 주제는 단순화 되었으나 표현하는 기법은 고구려의 회화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화려하고 세밀해졌습니다. | |
3) 무엇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당시 고구려인의 생활풍속에 대한 기록과 동시에 당시 고구려의 해외교류정책을 남겼습니다. |
▲ 덕흥리 고분 – 묘주인 좌상 ⓒ 고구려산책 | |
▲ 덕화리 2호분 – 북쪽천정벽화 ⓒ 고구려산책 | 4) 공동작업 : 그리고 한 명의 화가의 단독제작이 아닌, 같은 고분 내에 서도 다른 그림체임이 확인되는 것으로 미뤄보아, 여러 화가의 공동작업임을 알 수 있습니다. |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하여 21세기의 후손들은 고구려 인들의 풍속과 생활 습관, 의복과건축의 변천뿐만 아니라 고구려인의 기상, 종교와 가치관, 해외 관계도 등 고대의 사회를 생생한 현실로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가 없었다면 우리는 추상적인 증거만으로 고대의 삶을 추측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벽화는 땅 위에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의 기록이었습니다. 그 기록이 곡선과 색을 얻을수록 벽화는 거리를 아름답게 물들입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물만이 접할 수 있던 박물관형 미술이 마을로 나와 주민과 방문객에게 생활 속의 미술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벽화가 왕족과 귀족의 무덤에서 발견된 고급예술이었다면 현재의 벽화는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공미술입니다. 그러나 현재를 기록하고 역사의 증거가 된다는 명맥은 끊임없이 계승되어 왔습니다.
<현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천 배다리벽화마을의 한 벽화>
21세기의 벽화는 다양한 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일상공간을 아름답게 구성함과 동시에 예술가에게는 창작의 기회를, 주민에게는 예술향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처럼 현재진행형으로 대중의 삶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벽화. 각 마을마다 품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와 우리네의 일상을 기록한 벽화의 대중화는 현재진행형으로 숨쉬는 현실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 거리의 벽화가 먼 훗날 후대에는 2012년의 생활풍습을 알려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사실. 놀랍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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