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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시어머니의 원조는 아프로디테?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원형(archetype)

by KOCCA 2012. 3. 2.


  여러분,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전설, 설화, 신화의 차이점을 배웠죠?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특성상 전설, 설화, 신화는 어느 민족이든지 존재해 왔답니다. 그 중에서도 '신화'는 가장 급이 높다고 하죠. 왜냐면 '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니까요. ^^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라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신을 믿었고, 자연스럽게 그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신화는 뭐니뭐니해도 '그리스 신화'일 것입니다. 그리스에서 발생했고, 토마스 불핀치가 위대한 고전으로 탄생시켰습니다. 그리스 신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원형(archetype)'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야기 모음집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세계 곳곳에서 그리스 신화를 본뜬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탄생했다는 것이죠.

 

 

스위스의 심리학자 융은 모든 인류는 원형(archetype)을 가지고 있어, 공통된 정신과 신화를 교류한다고 하였습니다. 

 심리학자 융은 전 세계의 인류는 무의식(unconsioness)중에 공통된 원형(archetype)을 공유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무엇이냐 하면, 의식 밑에 있는 커다란 무의식은 모든 인류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 민족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의 주제와 형식은 저 민족에서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이죠. 제도와 산업 인프라 때문에 발생한 차이는 존재하나, 인류는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이야기를 보는 경우가 상당히 많죠(철학자 칸트나 헤겔이 말했던 '절대성·절대정신'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스 신화는 융이 주장했던 '원형'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요, 그리스 신화야말로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정신과 정서 - 사랑, 질투, 분노, 희망, 모험 등 - 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어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이야기들의 원천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그리스 신화는 기초 그 자체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주제와 패턴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죠. 우리들에게 익숙한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에 굉장히 많아서 놀라실지도 몰라요.

 

1.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은 빅 브라더 - 제우스

 


 모든 분들이 아실 제우스는 올림푸스의 제왕이고, 절대 군주입니다. 그 때문에 그 누구도 제우스에게 함부로 대항할 수도 없고, 형 포세이돈과 하데스도 동생 제우스를 떠받들었습니다. 인간사에 자주 간섭하기도 하여 수많은 인간과 요정과의 염문을 뿌렸으며 어떤 때는 잔인하게 벌하기도 하였습니다. 제우스는 처음부터 왕위 계승자였던 건 아니었습니다. 제우스의 아버지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로, 아들에게 권력을 빼앗길 것이란 예언 때문에 제우스의 5남매를 모두 집어 삼키자 제우스가 아버지에게 대항하게 됩니다. 이로써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 되었지요.

모든 아버지들이 바라길 자식은 자기보다 잘 되었으면 하지만 높은 위치에 있으면 그도 아닌가 봅니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이 아버지와 아들의 권력 투쟁을 증명하고 있고,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도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작가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에서는 구시대적인 인물을 대표하는 아버지와 신세대의 가치를 대표하는 아들이 서로 대립합니다. 작년에 종영했던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에서도 늙은 회장과 한창 나이의 셋째아들 김영민이 대기업 내에서의 권력 투쟁을 하죠. 한글 창제 스토리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이방원과 세종의 권력 투쟁이 생생하게 표현됩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프로이트가 주장했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정말 맞는 것일까요? 어린 시절부터 엄마를 차지하고 있는 아빠를 경쟁자로 생각하여 어른이 되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건 아닌지...

 

지그문트 프로이트 - 아들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사랑하여 아버지를 질투한다고 하였다.

 

2. 남편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 헤라

 


 제우스의 누이이지만 아내이기도 한 헤라는 헤스티아와 함께 가정의 여신인데, 질투가 매우 심한 아내로 그려집니다. 제우스가 워낙 여자를 좋아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어버렸지요. ^^; 아내로서 남편이 다른 여성에게 한눈을 팔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데 문화콘텐츠에서는 이런 유형의 아내가 주인공과 대립되는 관계로 그려지곤 하지요. 유부남을 사랑하는 주인공을 모함하고 경쟁하는 여성으로 말이죠. 많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진주 귀고리 소녀'가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탓에 그리트는 화가 베르메르의 집의 하녀로 들어오지만 어느 순간부터 베르메르를 사랑하게 되고 베르메르의 아내는 그리트를 모해하여 쫓아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즐겨 보시는 '해를 품은 달'에서도 중전 보경이 월을 질투하는데, 남편인 훤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여 어쩔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여러 드라마, 영화에서는 혼외사랑이 굉장히 미화되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만드나 막상 피해자는 정 반대의 입장이라는 걸, 헤라를 보면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진주 귀고리 소녀'에서는 화가 베르메르와 하녀 그리트의 러브스토리가 등장한다




3. 못된 시어머니, 새어머니의 원조 - 아프로디테

 




 전실 자식을 이유없이 구박하는 새어머니, 고부간의 극심한 갈등... 정말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듣던 얘기입니다. 콩쥐팥쥐, 장화홍련전, 접동새같은 전래동화, 시나 시어머니에게 구박받고 억울하게 죽은 처녀귀신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고, 드라마에서도 종종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과도한 노동과 인격 모독까지 행하는 스토리를 정말 많이 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있는 게 아니라 서양에 까마득한 옛날에도 존재했다는 거 알고 계신가요? 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못된 계모와 시모의 원조입니다.

 거품에서 태어난 여신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사람들이 사랑을 실현하도록 아들 '에로스(큐피드)'를 시켜 금화살을 쏘게 합니다. 이 화살에 맞은 사람은 처음 보는 이성을 좋아하게 된답니다.
 미의 여신이지만 천하의 아프로디테도 인간을 질투하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인간 공주 '프시케'때문인데요. 프시케 공주가 너무 아름다워 사람들은 아프로디테 신전을 가지 않고 가까운 프시케를 찬양합니다. 때문에 아프로디테의 마음엔 질투와 분노가 부글부글 끓습니다. 어느 날 에로스가 호기심에 프시케의 방을 몰래 갔다가 잠든 프시케를 보고 자기 화살에 찔려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어머니가 반대하는 결혼(동거)을, 에로스는 몰래 진행하다가 둘 사이에 불화가 생겨 프시케는 남편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여기에 아프로디테가 개입하여 프시케에게 온갖 힘든 과제를 주고 시험하죠. 보통 사람들같으면 자존심 상해서 때려칠만도 한데 프시케는 시어머니의 모진 구박을 이겨내고 남편을 차지합니다. 대단하죠?
 
 못된 시어머니에 대한 드라마, 납량특집은 소개하자면 일일이 나열하기가 힘들고(제가 즐겨보는 '사랑과 전쟁'에서도 이런 시모가 자주 등장합니다), 동화에서는 단연 콩쥐팥쥐, 장화홍련전, 신데렐라가 있습니다. 보다 자유분방할것 같은 서양에서도 못된 시어머니의 원형이 있다니, 신기하죠?

 

故최진실이 주연으로 등장했던 드라마. 틀에 박힌 스토리였지만 고부간의 갈등을 생생한 연기로 잘 보여줬다

 

 4. 공주도 구하고 명예도 얻고 - 페르세우스

 



 괴물에게 잡힌 공주를 용감한 왕자가 구하고, 명성도 얻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까지 한다? 어디서 많이 본 스토리 라인이죠? 이런 스토리의 중심에는 그리스 대표 영웅 '페르세우스'가 있습니다. 제우스와 인간 공주 다나에 사이에서 태어난 페르세우스는 어린 시절 작은 섬마을에서 자랍니다. 활기차고 바른 소년 페르세우스에게 위기가 찾아오는데, 왕이 어머니 다나에의 미모에 반한 나머지 어머니에게 구애하지만 페르세우스는 사악한 왕으로부터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그 조건으로 '메두사'의 머리를 베어오기로 하고, 모험을 떠납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진진한 일화들이 펼쳐지죠. 신탁, 의붓누나 아테나의 도움, 그라이아이와의 만남, 가장 중요한 '안드로메다' 공주와의 만남까지. 안드로메다는 에티오피아의 공주였지만 어머니 카시오페아의 경솔한 말로 바다의 신의 노여움을 사고 바다괴물의 제물이 됩니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박은 방패와 아테나의 칼을 이용하여 바다괴물을 물리치고 안드로메다를 구합니다. 후에 갖은 고생이 따르지만 어머니도 구하고 안드로메다와 결혼하여 미케네라는 나라를 세웁니다.

 

 왕자 혹은 기사가 갇힌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굉장히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라푼젤', 우리나라 전래동화에서는 '무사와 세 공주', '꽁지닷발 주둥이닷발(공주가 아니라 친누나를 구하는 이야기지만 괴물로부터 여잘 구하는 구조)', 게임에서는 잘 알려진 '슈퍼마리오'와 '마계촌', 그리고 RPG '아마란스 3D'가 있습니다.

 현대에는 이런 스토리가 성 고정관념을 조장한다고 해서 비판이 많지만, 꼭 '공주를 구한다' 때문에 페르세우스 신화가 의미있는 건 아닙니다. 페르세우스는 말년을 평탄케 보낸 몇 안 되는 영웅이기도 하며, 그의 모험 구도가 후에 굉장히 많은 소설과 디지털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페르세우스의 모험 공식'을 모방하지 않은 모험 이야기는 거의 없으며, 롤플레잉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인 물품들만 갖춘 채 혼자 길을 떠나, 신전을 찾고 누나의 도움을 얻고, '그라이아이'란 괴노인들까지 만나죠. 게다가 계속되는 갈등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 이야기에 푹 빠지게 만듭니다.

 




 심리학자 융은, 모험 이야기는 자아를 찾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명예나 미인과 같은 구체적 목표가 아닌, 진정한 나를 찾고 세상의 진리를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특히 숲에서의 길찾기는 무경험자들이 느끼는 두려움, 지식, 그리고 성인 세계와 자기 자신을 알아나가는 과정을 가리키는 은유라고 하였습니다. 페르세우스도 계속 숲에서 방황하잖아요? 그것이 다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거의 모든 민족의 설화와 신화에서는 말합니다.

 

 

5. 뒤를 돌아보면 안 돼 -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뒤를 돌아보면 죽는다'라는 이야기를 동화를 읽을 때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깨는 바람에 사랑하는 사람을 읽은 최초의 사람이 나옵니다. 음악가 오르페우스는 나무의 요정 에우리디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합니다. 그러나 신혼 때 에우리디케가 독사에게 물려 죽자, 오르페우스는 저승까지 찾아가 에우리디케를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조건으로 지상에 올라갈 때까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고 하데스는 말했습니다. 거의 올라올 때 즈음 오르페우스는 이것을 망각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에우리디케 소생에 실패합니다.

 이런 금기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깨지기 위해서일까요? 교과서에도 나오는 '용소와 며느리바위'에도 중이 며느리에게 시끄러운 소리가 나도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고 주문합니다. 그런데 번개소리가 나서 며느리가 뒤를 돌아보니 순식간에 화석이 되어버렸죠. '센과 치히로의 모험'에서도 치히로가 터널을 지나는 순간 뒤를 돌아보면 인간 세계로 갈 수 없다고 지시하였습니다. 또한 일본 신화에 나오는 이자나기 역시 비슷한 금기를 받았습니다.
 이는 인간의 호기심이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입니다. 금기엔 엄청난 책임이 달려있지만 그 금기를 지키는 경우는 없습니다.

 


 

6. 苦盡甘來 - 헤라클레스

 


은하수가 만들어진 경위 - 제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자고 있던 헤라의 젖을 먹이다 헤라가 깨자 젖이 뿜어져 은하수(milky way)를 만듦

 

 


 그리스 신화를 모르시는 분들도 헤라클레스는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일요일 아침에 하는 만화에서 줄기차게 나왔고 게임으로까지 나왔기 때문이죠. ^^ 그리스 신화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유명한 영웅은 뭐니뭐니해도 헤라클레스입니다. 왜냐하면 헤라클레스는 태어났을때부터 최고 영웅으로 추앙받기까지 온갖 고생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수많은 영웅(페르세우스 제외)들이 잘 나가다가 말로가 불행했지만 헤라클레스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영광을 차지한 인간의 표상'이란 수식이 붙습니다.


 헤라클레스란 이름의 뜻은 '헤라의 영광'이란 뜻입니다. 제우스가 인간 여성 알크메네와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에게, 자고 있는 헤라의 젖을 몰래 물리다 바람피운 것을 들켜버린 것이죠(힘센 아기 헤라클레스가 먹던 젖은 뿜어져 '은하수'를 만듭니다). 그 후로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굉장히 싫어하여 그가 하는 것마다 큰 훼방을 놓습니다. 적국과의 전투에서 이기는 데 큰 공을 세워 헤라클레스는 공주와 결혼을 하지만 정신 착란으로 아내와 자식들을 죽입니다(정신 착란도 헤라가 일으킨 저주입니다). 헤라클레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신탁을 청하여 죄를 씻고 싶다고 합니다. 그 후로 티린스의 왕을 12년동안 섬기면서 그 유명한 12공업을 행합니다. 이 '12공업'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하지 못할 일인데 그도 그럴것이 온갖 괴물들을 처치하는 일이라 그랬습니다(여기에서 케르베로스, 히드라 등 RPG에 자주 나오는 몬스터들이 등장합니다). 헤라의 끈질긴 괴롭힘과 그의 기구한 운명 때문에 12공업은 매우 어렵게 성취되고 그 이후로도 큰 장애에 봉착하죠.
 
 헤라클레스 신화는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명화로도 재탄생되고, 디즈니에서 만화로도 만들었습니다. 어려움을 모두 이겨냄과 동시에 유혹의 수렁에 빠졌다가 극복한 인물의 원형이거든요. 마치 '머털도사와 108요괴' 처럼요. 

 사람들은 순탄한 이야기보단 온갖 장애와 유혹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동합니다. 장애와 유혹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극복하기 어려운 걸 알기에 그렇습니다. 헤라클레스 이야기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의 '원조'인 셈이죠.

 

 우리가 어디서 많이 보던 이야기의 상당수가 '그리스 신화'에서 나왔다는 사실, 신기하죠? 옛날엔 교통도 통신도 발달하지 않아서 먼 나라 사람들과의 교류도 없었는데 말이죠. 모두 융이 말했던 원형(archetype) 덕입니다. 그렇다고 그리스 신화가 현대 스토리텔러들에게 모방 거리를 제공한다고 오해를 하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과학으로 풀기 힘든 인간의 본성, 진리, 내적 성숙의 스토리가 담겨있거든요. 우리도 이런 원형을 철학없이 모방하기보단 그리스 신화에서 창의성을 배우고,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