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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게임

국내 게임 산업 노동환경 이슈

by KOCCA 2022. 1. 5.

한국의 게임 산업은 2000년대 PC 온라인 게임 시절부터 현재 모바일 게임 시대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세계 4위 규모로 성장했고, 국내 콘텐츠 수출액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시작하여 대기업으로 발돋움한 글로벌 게임 기업들이 다수 등장할 정도로 한국 게임 산업은 단기간에 급격히 성장했고, 게임 개발자라는 직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단기간에 큰돈을 벌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근사한 직업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게임 산업은 열악한처우, 과도한 초과근무 및 야근 관행, 임금 체불,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 등 노동환경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후 게임 업계 노동환경에 대한 실태조사와 근로감독, 토론회 등이 이어지면서 고용안정과 처우 개선의 필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여기에 2018년부터 주 52시간제가 단계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고, 일부 대형 게임사에서는 노조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그에 따라 고용안정성 강화, 임금 관련 단체협상 및 성과급 지급, 주 52시간제 정착 등 여러 긍정적 소식들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과도한 야근과 초과근무를 비롯해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고통받는 종사자들이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국내 게임 산업 노동환경 실태

1) 고용 및 처우

 

2020년 기준 국내 게임 업계 종사자들 중 상용직은 전체의 98.3%, 그중 정규직이 98.8%로 조사되었으며, 계약 방식은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이 97.3%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근로계약 방식이나 종사상 지위 측면에서 볼 때 게임 산업은 다른 콘텐츠 분야에 비해 정규직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고용안정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프로젝트 중단 또는 팀 해체 시 예상되는 조치에 대한 응답을 보면 권고사직(17.9%), 해고(4.9%), 대기발령 (10%),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전환배치(24.6%), 본인 의사에 따라 회사 내 기존 팀이나 새 조직 합류(42.3%)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본래 프로젝트 기반의, 잦은 이직을 특징으로 하는 게임 업계 특성상 실제 현장에서의 고용안정성은 크게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용안정성은 종사자의 경력, 직군 등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위의 질문에 대해 권고사직 또는 해고를 예상한 비율이 경력 1년 미만의 신규 인력(24.9%), 10년 이상 시니어들 (26.9%), 그리고 그래픽 직군(24%) 종사자들에서 특히 높게 나타나, 이들의 고용불안정성 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임금 및 복리후생 부문을 보면,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는 게임사가 전체의 82.5%로 조사되었고, 회사 규모가 클수록 의료비, 식비, 문화체육 오락비, 교통비 등에 대한 지원 비율이 크게 상승했으며, 교육훈련의 경우에도 300인 이상 기업 소속 종사자의 경우 46.4%가 회사가 제공하는 교육훈련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전체 평균인 22.7%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습니다.

 

소득수준과 관련해서는 직군, 성별, 연령 및 경력에 따른 소득수준 차이가 뚜렷하게 확인 됩니다. 예컨대 디렉터급이나 부서장들의 경우 남성 비율 80% 이상, 연령대 40대 이상 비율이 높으며, 월 400만 원 이상 소득이 해당 직군의 40%를 넘었습니다. 이에 비해 QA·운영·관리 직군의 경우 여성이 30.2%로 종사자 전체의 여성 비율(22.9%)보다 높았고, 연령대는 20대가 47.3%를 차지했으며, 소득수준에서는 15.7%가 월 200만 원 미만으로 나타났습니다.

 

2) 노동시간 및 건강 문제

 

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2020년 평균 노동 시간은 주 평균 42.7시간, 주 52시간 초과 비율 0.9%, 재택근무 비중 36.2%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2019년 같은 조사와 비교할 때 주 평균 노동시간은 3.8시간, 주 52시간 초과 비율은 14.5% 감소한 수치인데,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증가 또는 중소업체들의 경우 일감 감소에 따른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됩니다. 한편, 중요한 마감이나 게임 출시 등을 앞두고 이루어지는 게임 업계 특유의 집중 초과근무 관행인 ‘크런치 모드(crunch mode)’의 경우, 23.7%가 최근에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크런치 모드를 경험했다고 응답했고, 일단 크런치가 진행되면 평균 7.5일간 지속되며, 길게는 일주일간 52.9시간, 한번에 25.4시간 동안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크런치 모드 이후 휴식은 대체적으로 보장되는 것(70.7%)으로 나타났습니다.

 

[2020년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건강과 관련해서는, 게임 업계 종사자들중 2020년 건강 문제를 한 가지라도 경험한 비율은 92%에 이르렀으며, 건강 문제의 일과의 관련성은 평균 91%로 조사되었습니다. 종사자들은 주로 두통, 눈의 피로, 상지 근육통, 요통 등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 일에 대한 인식과 전망

 

일에 대한 만족도는 전체 평균 100점 만점에 59.2점으로 나타났고, 작업환경의 안정성 (61.5점)이 가장 만족스러운 반면, 임금수준(56.5점)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낮게 나타났습니다. 만족도는 회사 규모에 따라 달랐는데, 전반적으로 소규모 사업체 소속 종사자들에게서 특히 임금수준, 워라밸, 복리후생에 대한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높아 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특히 중소규모 사업체(50∼99인) 소속 종사자들의 경우 일의 즐거움, 공정한 대우 등의 항목에서 대기업 또는 스타트업 종사자들에 비해 부정적 인식이 강한 것 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에 대한 미래 전망을 살펴보면 향후 5년 뒤까지 현재 직업이 지속가능한가에 대해서는 90%가 가능하다고 응답하여, 2019년 조사결과(62.7%)에 비해 긍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40대의 경우 지속가능전망이 가장 낮았고(80%), 중소 사업체(5∼99인) 소속 종사자들의 경우 부정적 전망이 강하여, 이들 중 27.3%가 3년내 이직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전체 이직의향 평균 15.5%). 이직의향의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47.1%)이 가장 많이 꼽혔으며, 이에 대해서는 특히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 종사자들의 응답률이 높았습니다(81.8%).


게임 산업 노동환경 문제에 대해 종사자들은 긴 노동시간과 고용불안정성, 낮은 보수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고, 신규 채용 인력 감소, 불투명한 미래의 커리어 또한 다소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2020년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2020)

 

     

법제도 및 환경 변화의 영향

 

1) 노동시간 단축(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변화

 

<2020년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시점 기준(2020년 8∼10월) 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사업체는 68.2%로 나타났습니다. 이 제도의 시행에 따른 변화가 없다는 답변이 66.8%로 높았지만, 근무시간 감소하였습니다(10.6%), 근무시간 유연성 확대(9.0%), 신규 인력 추가 채용(6.7%), 생산성 향상(6.0%) 등의 변화가 부분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한편 이 시점까지도 주 52시간제 도입 대상 사업체의 25%는 주 52시간 준수를 위한 준비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한편,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종사자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업무강도, 크런치 모드, 임금수준, 고용안정성, 생산성, 휴가 일수, 휴가 사용 가능성 등이 모두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따라서 종사자들은 대체로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인하여 임금, 고용안정성, 휴식 등이 늘어나고 생산성이 향상되지만 그만큼 업무 강도가 늘어나고, 크런치 모드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2) 코로나19에 따른 변화

 

조사 시점인 2020년 8∼10월 시점에서 ‘현재까지 코로나19가 게임 산업 종사자에게 미친영향’(증가 또는 감소에 따라 ±100점 기준)을 보면 재택근무(35.6점), 비대면 회의 및 온라인 협업 도구 사용(30.1점), 임금 및 보수(20.0점), 노동시간(10.9점), 업무 강도(10.7 점), 구직 또는 경력 유지·발전 기회(8.4점) 등이 증가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전반적으로 재택 근무, 비대면 협업이 늘었고, 일할 기회와 임금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0년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2020)

그러나 회사 규모별로는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300인 이상 사업체를 제외하면 회사 규모가 작아질수록 임금·보수가 늘어난 정도가 낮았고, 특히 5인 미만 사업체 종사자들의 경우 재택근무 비중은 크게 늘었지만, 임금·보수, 업무 강도, 노동시간, 고용안정성,구직 또는 경력 유지・발전 기회 부분은 오히려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코로나19가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체에는 긍정적 영향을 준 반면, 상대적으로 소규모 사업체에는 매우 부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향후 전망 및 이슈

최근 게임 산업 노동환경은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들의 성과급 지급, 풍요로운 복지 혜택 등 ‘모범 사례’가 주목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게임업계 노동환경과 관련된 구조적 문제점들은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게임산업 노동환경 관련 초과근무 관행이나 열악한 처우의 문제는 중소 게임사들로 갈수록 심각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중소 개발사들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양극화 심화 등의 상황속에서 경영난에 처하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노동환경 또한 더욱 악화된다는 지적들도 있습니다. 결국 산업양극화가 노동환경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국내 노동환경을 개선시키는 문제는 결국 양극화 구조를 극복하는 문제와 맞닿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장기적으로는 게임 관련 기술혁신 및 생산 환경 변화가 게임 산업 노동환경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됩니다. 상용 게임엔진과 AI, 5G 등 기술 및 인프라의 변화는 일부 업종의 자동화 또는 외주화로 이어질 수 있고, 엔진 프로그래머와 같은 일부 직군들에 대한 노동시장 수요를 감소시키기도 한다. 일례로 상용 게임엔진 보급은 게임 생산기술 및 
제작 플랫폼의 표준화를 가능케 하고, 1인 개발 및 스타트업의 업계 진입장벽을 낮추는데 긍정적 영향을 주었습니다. 수익 모델이나 마케팅, 기획 등이 중시되는 방향으로 생산 관행을 바꾸는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긍정적 기회의 측면 외에도, 특정 세대나 특정 직군 종사자들을 취약하게 만들 여지도 있습니다. 때문에 향후 기술혁신이 노동환경에 미칠 변화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게임 업계 전반의 남성 중심적 문화의 폐해를 극복하고 성평등 의식을 강화할 필요도 있습니다. 최근 아트, 그래픽 직군이나 사운드(성우) 직군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게임 커뮤니티나 SNS 등에서 각종 비난에 시달리고, 해당 프로젝트에서 퇴출되는 사례들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이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본래 남성 중심적이었던 게임 커뮤니티 문화는 종사자들의 권익 침해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기에 갈등해소를 위한 이용자 및 생산자들의 노력이 요구됩니다.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2021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게재된 글을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