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라는 말이 쓰인 웹툰 <스노우캣>이 있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와 개 한 마리를 키우는 사람이자 직업이 수의사인 사람으로 저 또한 그 이야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일이 바쁜 시기에는 거의 이삼 일에 한 번은 죽는 환자를 보거나, 아이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생전 처음 보는 환자의 보호자에게 전하게 됩니다. 키우던 아이 때문에 보호자가 우는 모습을 본 날은 퇴근하면 저도 모르게 집에 있는 고양이와 강아지를 꼭 안아줍니다. 고양이는 안기는 게 싫어서 발버둥 치고, 개는 성격이 안 좋아서 으르렁대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날은 그렇게 아이들을 안아주는 것만으로 오히려 제가 큰 위로를 받습니다. 고양이는 이제 6살이 됐고, 유기견을 입양해서 나이를 정확히 모르는 개도 노견(老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아이들은 내가 그렇게 자기들을 끌어안을 때 큰 위로를 받는다는 걸 알고 있을까요?
교과서로 수의학을 공부하는 것과 직접 키워보는 것은 다르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수의대를 다닐 때부터 반려동물을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고양이를 키우기로 마음 먹은 건 사실 웹툰의 영향이 컸습니다. <전설의 고향>에서 본 고양이에 대한 무서운 에피소드 때문에 어릴 적에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고양이가 해코지를 당한 인간에게 죽어서 복수한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어른들은 고양이가 요물이라는 얘기를 하곤 했었고, 밝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고양이의 동공이 세로로 가늘어진 눈은 어쩐지 무서운 느낌을 줬던 것도 같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많지도 않았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이 바뀐 건 웹툰 <스노우캣> 덕분입니다. 당시엔 웹툰도 지금처럼 작품이 많지 않았지만, <스노우캣>에 나오는 나옹을 보고 고양이가 매력이 있는 동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첫 고양이로 아메리칸 쇼트헤어를 키우기로 한 것도 <스노우캣>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많아진 것처럼 반려동물 웹툰도 꽤 많아졌는데, 저처럼 웹툰을 보고 개나 고양이를 키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요?
반려동물 웹툰은 픽션보다는 생활툰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경험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개와 고양이가 인간에게 나눠주는 행복은 일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삡뺩 작가의 웹툰 <푸들과 Dog거중>이나 마일로 작가의 <극한 견주> 같은 작품은 강아지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보여줍니다. 어린 강아지는 보통 집안의 말썽꾸러기들인데, 강아지가 사고 치는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 것을 보면, 개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공감을,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에겐 재미를 선사합니다.
저런 사고뭉치랑 어떻게 같이 사나 싶다가도 웹툰을 처음부터 찬찬히 보다 보면 개에 대한 작가들의 애정이 느껴집니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는 아이패드 액정을 깨뜨린 적이 있고, 개는 유기견 출신으로 중성화를 늦게 해서인지 아직도 마킹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배뇨 실수를 합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울컥하는 마음에 혼자 사는 게 마음 편하지 싶다가도 자기 전에 꾹꾹이를 하고 발밑에 자리를 잡고 눕는 걸 보면 내가 다시 동물들이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배운 도둑질이 있다 보니 반려동물 웹툰을 볼 때 가장 흥미롭게 보게 되는 부분은 동물병원 방문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동물병원 방문에 관한 얘기가 등장하지 않는 반려동물 웹툰은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강아지들이 주인공으로 나올 때는 예방 접종이나 중성화 수술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고, 노령견이나 노령묘가 주인공으로 나올 때는 조금 더 무거운 얘기가 나옵니다. 제가 처음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수의사가 됐을 때였고, 개를 입양했을 때는 이미 어느 정도 임상 경험이 쌓인 수의사가 됐을 때여서 저는 한 번도 보호자의 처지에서 동물병원을 방문해본 적이 없습니다. 동물병원은 진료실의 뒤편에서 진료와 처치가 이뤄지고, 보호자는 반려동물을 수의사의 손에 맡긴 채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웹툰을 보면 그런 보호자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수의사가 하는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모습도 나옵니다. 수의사가 하는 얘기를 보면 대충 어떤 상황이었겠구나, 어떤 병이 있겠구나, 하는 정도를 예측해 보기도 합니다. 혹은 내가 진료를 보는 수의사였다면 저렇게 말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초 작가의 웹툰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에는 개의 피부 종양을 어떻게 할 수 없겠냐는 보호자의 얘기를 듣고, 수의사가 노령견은 마취했다가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살 만큼 살았잖아요.” 라고 대답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잔인한 말이지만, 제가 진료할 때마다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수의사가 치료를 이어가려고 해도 보호자가 먼저 나서서 나이가 많으니 적극적인 치료를 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는 때도 있고, 반대로 더는 수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보호자가 뭐든지 해달라고 얘기하는 때도 있습니다.
요즘은 규모가 크고 전문적인 장비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병원들이 많아져서 15살이 넘는 노령 반려동물도 어렵지 않게 마취를 하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동물병원이 노령 동물을 마취했다가 마취 중 사망했을 때의 뒷감당을 두려워해서 마취를 꺼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리 마취 전에 동의서를 받고 사전에 위험 부담에 대해 고지를 한다 하더라도 반려동물이 사망했을 때의 상실감은 엄청난 것입니다. 당연히 수의사들도 결과에 대한 겁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심장병이 있어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 분명한 환자가 종양이 생긴다면, 원칙적으로는 수술로 종양을 제거해야 하겠지만, 수의사로서 종양을 제거하든 하지 않든 수명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이고, 수술했다가 환자가 더 빨리 죽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고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은 불필요한 수술을 권유해서 내가 보호자의 지갑을 털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보호자의 치료 의지에 따라, 수의사의 실력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치료 결정이 내려지곤 하는 게 동물병원입니다.
보편 복지의 차원에서 아프면 치료가 이루어지는 사람 병원과는 달리 동물병원은 치료비에 따라서 치료가 진행되기도 하고 진행되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의료 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니까 동물을 처음 키우는 사람들은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청구서를 받으면 깜짝 놀라곤 합니다. 이선 작가의 웹툰 <개를 낳았다>에 나오는 명동이는 어릴 적 파보 장염을 앓았는데, 아마 작중에 나오는 200만 원은 훌쩍 넘는 금액을 실제로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전염병이라 격리 입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 파보 장염의 치료비는 꽤 비싼 편입니다. 그렇다 보니 파보 장염은 진단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치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분양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증세가 나타나기 때문에 치료비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 애완동물 가게의 분양비보다 비싼 비용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고, 애완동물 가게에 연락해 환불을 받거나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작중에서 수의사가 치료할지 말지 물어보는 건 그래서입니다. 이선 작가처럼 이미 정이 많이 든 사람들은 치료를 해주지만, 어떤 경우에는 보호자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말 그대로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해주는 때도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는 얘기는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수의사들도 친구가 동물을 키운다고 하면 제일 먼저 적금부터 들라고 얘기할 정도로 동물이 아프면 돈이 많이 듭니다. <개를 낳았다>에는 작가가 명동이를 치료해준 것과는 달리, 돈이 없어서 뼈가 부러진 강아지를 치료해주지 못하고 유기한 보호자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실제로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나이가 들면 어딘가 고장 나기 시작합니다. 동물병원에 자주 들락거리게 되는 시기도 키우는 반려동물이 나이가 들었을 때입니다. 평상시에도 아픈 반려동물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아집니다.
정우열 작가의 <노견 일기>는 나이 든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자세히 보여줍니다. 단순히 반려동물이 귀여워서라는 이유가 아니라 함께 살아온 시간과 추억이 번거로운 병시중을 들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노견 일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신부전과 고혈압이 있고, 자잘하게는 외이염과 디스크, 백내장도 있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여야 하고, 언제 어떻게 상태가 나빠질지 몰라 걱정도 하게 됩니다. 저도 보호자에게 집에서 직접 수액을 주사하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심하면 약을 하루에 3번 먹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그렇듯 동물도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병들은 이렇다 할 답이 명확하게 있지도 않습니다. 대부분은 진행을 늦추는 정도의 관리를 할 수 있을 뿐이고 완치를 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반려동물 웹툰을 볼 때 저도 모르게 댓글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보통 다른 경우라면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댓글이지만, 반려동물 웹툰의 댓글난은 웹툰을 본 독자들이 자기 개와 고양이는 어떻다며 공감하고, 때론 자랑도 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반려동물 웹툰의 댓글은 때론 웹툰만큼이나 훈훈하고, 재미있습니다. 찬찬히 달린 댓글들을 읽다 보면 반려동물이 사람과 함께 살며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힘을 느낍니다.
아마 그런 이야기를 때론 재밌고, 때론 감동적이게 웹툰이라는 매체로 풀어냈다는 것이 반려동물 웹툰이 계속해서 독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개나 고양이를 처음 키우기로 마음먹는 데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보통 가장 큰 이유는 귀여워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키우기 전에는 한없이 귀여운 아이가 계속 나만 바라봐 줄 거로 생각하니까 당장 키우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반려동물 웹툰은 개그를 위주로 하는 웹툰이든 힐링을 위주로 하는 웹툰이든 한 생명을 책임지기로 하는 것은 무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단순히 귀여움만으로 함께하기에는 내 삶에 부담이 되는 것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모든 반려동물 웹툰은 필연적으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 개 한 마리와 함께 사는 반려인으로서 그리고 그 책임의 무게를 매일 직접 보게 되는 수의사로서 웹툰에서 너무 많은 선물을 받습니다.
글윤지만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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