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사람이 만드는 콘텐츠산업, 사람을 만드는 콘텐츠산업

by KOCCA 2018. 11. 14.

 

 

콘텐츠 업계를 외부에서 보면 미지의 공간으로 보일 때가 많다.

거기에 어떻게 진입하고, 또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

콘텐츠 현장의 전문가들이 모여 치열한 적응과 창조를 하는업계의

내밀한 이야기와 그곳에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한국만화영상위원회 이사이자 만화·웹툰 관련 회사(스튜디오아이레)를

세워 운영하고 있는 김병수 목원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과 교수와

360 영상에 주력하면서 VR 콘텐츠와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인

서틴플로어 송영일 대표가 참석하였다.

거기에 하드웨어에 중심을 둔 시뮬레이터 형 콘텐츠와 3D VR 콘텐츠와 게임,

체험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는 스토익 엔터테인먼트의 최윤화 CEO가 함께 했다.

 

 

(왼쪽부터) 김병수 목원대 교수, 최윤화 스토익 엔터테인먼트 CEO, 송영일 서틴플로어 대표


김병수 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재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 같은 ‘콘텐츠 혁명’이라고 할 기술적·문화적 변화를 실감하시는지 자유로운 의견을 부탁드린다. 독자가 체감할 수 있게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해 달라.


송영일 신기술이 등장한다고 해서 이전 단계의 기술이 곧바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VR 게임이 포함된 게임 생태계를 예로 들어 보자. 오락실에서 하는 아케이드 게임도 있고 콘솔 게임, PC 게임뿐 아니라 모바일 게임에 이르기까지 게임의 제공 형태는 다양하다. 이 중 새로운 기술에 바탕을 둔 게임이 나타난다고 해서 전에 존재하던 부분이 즉시 사라지는 게 아니다. 다만 디바이스가 늘어날 뿐이다. VR 게임도 색다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스크린이라고 생각한다. 기존과는 좀 더 다른 개념의 스크린이 추가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윤화 4차 산업혁명과 VR 기술을 무조건 연결시키기엔 애매한 지점이 있다. VR 콘텐츠 개발의 일선에서, VR 게임이 PC와 모바일에서 넘어오는 유저들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중이다. 사실 VR이라는 매체로 게임을 만들다 보니 콘텐츠 자체는 결과적으로 아케이드 게임에 회귀하게 되었다. 특정한 상황에서 시뮬레이터를 즐기러 오는 손님들을 받아 게임을 실행시키다 보니, 다시 옛날 오락실의 개념으로 돌아온 셈이다. 여기서 유저 계정 관리 등 다양한 이슈를 해결해야 산업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송영일 광의적으로 보면, 4차 산업혁명을 정확히 무엇이라 정의하기는 힘들다. 사실 콘텐츠는 10년 전이든 100년 전이든 다름없이 문화를 이끌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국내외 강연을 다니면서도 마지막에 공통적으로 ‘Contents is King’이란 말을 강조한다. 세계적인 기업 넷플릭스 또한 비디오 대여점으로 시작하였지만 결국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콘텐츠를 보게 만들었다. 이런 넷플릭스가 궁극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건 ‘콘텐츠’, 그리고 자신들이 보유한 IP다. 넷플릭스는 연간 9조 5천억 원정도를 들여 자체 IP를 제작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내년에 5G 서비스를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제공하겠다고 하는데, 그 5G 산업 안에서도 결국 콘텐츠가 두각을 나타낼것이라 생각한다. VR은 이런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될 것이다.


김병수 ‘일자리’라는 주제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자. 각 회사는 원하는 인재를 잘 수급하고 있는지, 혹은 우선 채용한 후 교육을 진행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달라.


최윤화 현재 게임 기반의 경력자들을 계속 찾고 있다. 학교 안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데, 학교와 저희 회사가 산학협력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신규 인력을 채용하기도 한다. 서로 기술과 비전이 검증된 단계에서 입사하여, 현재 20대 위주로 인력 구성이 많이 되어 있다.


송영일 대기업인 넥슨, 네이버, 카카오 등에는 들어가길 희망하는 이들의 이력서가 많이 쌓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규모로 들어가면 어느 회사든 비슷할 것이다. VR은 아직 스스로 돈이 생겨나기 힘든 시장 규모를 갖고 있다. 처음부터 VR에 집중해 왔던 회사들이 업계를 지키며 계속 스케일을 키워나가는 현황이다. 문제는,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게임을 개발하던 인력들이 VR 게임에 들어와서는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게임에 대한 UI, UX부터 시작해서 모델링 방법 등이 전혀 다르기에 경험이 있는 인력을 찾기가 힘들다. 영상도 마찬가지다. 일반 영상에서360 영상 업계로 오면 카메라 다루는 기술만 제외하고는 모두 새로 배워야 한다. 이렇듯 원하는 인력을 구하기는 힘들지만, 나름의 비전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김병수 그렇다면 현재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과 거리를 좁혀 접점을 찾아갈 현실적인 방안이 없는가? 가령, 고용진흥공단에서 하는 ‘일-학습 병행제’라는 인턴제도가 내년부터 콘텐츠 업계에 적용된다. 학교와 기업이 합작하여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는 셈이다.


송영일 인력들에게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달란트를 갖고 있다. 그 달란트를 본인이 못 찾았다면 회사에서 찾아낼수도 있다. 사내 인력을 관찰하다가 어떤 사람이 지금 맡은 업무보다는 다른 일에 더 적합해 보이는데 왜 굳이 이 작업을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면 다른 일도 한번 시켜 본다. 슈퍼바이저나 경영자가 보았을 때 이 사람이 다른 방면에 더 많은 가능성을 지닌 것 같아 권유하는데도 굳이 기존 포지션을 고집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본인이 또 다른 역량을 갖고 있다는 외부의 판단에 유연하게 반응한다고 해서 손해를 볼 일은 없다.


김병수 현재 가르치고 있는 만화·애니메이션학과의 학생에게 동일하게 작가가 되기 위한 교육을 제공하면서도 고민이 크다. 웹툰 시장에서 작가를 원하는 게 절반 정도라면, 나머지 부분에서는 기획이나 PD, 편집 데스크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인력을 당연히 필요로 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그런 쪽으로는 지원자가 없다. 인재 수급에서 불균형이 보인다고 할까.


최윤화 저는 원래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했다. 어떤 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그곳에서 파생된 일에만 종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할 것 같다. 학생들도 진로 상담을 할 때부터 어떤 대학의 어떤 과에 진학하면 이런 업무에 종사할 거라고 단정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직업군이 있다는 것도 결코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신규 인력이 업무 환경에 들어왔을 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에서는 전환이 잘 되는 인재가 필요하다. 그런데 자신의 직군을 처음부터 한정해 두면 회사에서 다른 분야에 속한 업무 지시를 내렸을 때 경직된 반응을 보인다. 어떻게 보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역량을 기를 수도 있는데도 본인들이 회사가 자기의 ‘전문성’을 침해한다고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 발전을 저해하는 고정관념과 답답한 사고방식이 부지불식간에 만연해 있는 듯하다.


송영일 교육 현장에서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육성하고 있는가, 또 필드에서는 어떤 일자리에 어떤 인재를 필요로 하는지 서로 대화를 잘 나눠야 한다고 본다. VR 산업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단순하게 프로그래머와 모델러만 필요한게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위 끼가 있는 친구들이 뛰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면 좋겠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는 입장하면 영상을 제작하고 놀 수 있는 ‘유튜브 스페이스(YouTube Space)’가 조성되어 있다. 이런 시설에는 개인이 살 수 없는 비싼장비나 프로그램이 많이 필요하기에 국가나 대학 차원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리고 본인들이 이런 놀이터에서 즐겁게 만든 것들이 차후에 포트폴리오가 될 수도 있다. 대학과 사회에서 개인에게 각자 맞는 직군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김병수 우리나라 곳곳에 설치된 콘텐츠코리아랩을 방문해 보면 어떤 지역은 활발히 활용되고 있지만, 어떤 곳에서는 다소 침체되어 있기도 한다. ‘놀이터’ 만 만든다고 해서 작동을 하냐면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물리적인 공간이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도 네트워크를 어떻게 연결시킬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인다.


송영일 돈을 떠나서, 자신이 2~3년 후에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의식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전반적으로 사회에 깔려 있는 직업관을 의심하고 고민하면서 직업에 대한 원초적인 화두부터 고민하면 좋겠다. 대다수 학생들이 자신의 달란트를 찾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본다. 한 친구는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는데, 디자인은 잘 하지 못하지만 VR 스티칭(stitching)이라는 360 영상 관련 프로그램을 게임처럼 다루더라. 이 친구에게 스티칭을 더 공부해 보라고 제안했더니 과연 잘 소화해내서 그후부터 VR 스티칭 담당으로 업무를 바꾸었다. 원래 직업이었던 디자이너에 비해 스티칭으로 일하면 거의 두 배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자기도 놀라더라. (웃음)


김병수 그렇다면 회사에서는 당장 어떤 인재를 필요로 하는가? 회사와 대학에서 생각하는 인재상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인재상이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최윤화 현재 업계에서는 적은 인원으로도 다룰 수 있거나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실무자들이 신기술을 빨리 습득하려고 노력하면 잠재력이 생긴다. 보통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찾고, 적용시키고, 서로 독려해서 실제로 쓰게 한다. 이렇듯 업무 역량을 확대해 나가는 부분에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이 인재라고 판단한다. 직군으로는 아트나그래픽 쪽 인력들이 가장 많이 필요하다.


송영일 요즘 블록체인이나 VR에서도 많은 기술이 등장하는데, 저희도 매일 공부한다. VR업계 하나만 해도 매일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기술 하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온 인력들이 달라붙어서 습득해야 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고 욕심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는 소위 ‘인성’을 본다. 일자리가 없다고 말하지만 구직자가 먼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고, 회사는 당연히 열의에 불타는 구직자가 오면 뽑지 않을 이유가 없다.


김병수 타 분야에 비해 변화 속도가 빠른 것이 콘텐츠 업계라고 생각한다. 미래에는 어떤 신직종이 창출될지, 그리고 새로운 경향성에 맞춰나가게 될 사업 방향에 맞춰 어떻게 인력을 수급할지에 대해 고민하셨던 부분을 나누고 싶다. 예를 들어 VR이나 블록체인, AR 같은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나오는 새로운 기술을 좇아갈 콘텐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거기에 맞추어 어떤 일자리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최윤화 기술 변화에 일일이 부응하기보다 기본기를 갖춘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콘텐츠를 담는 그릇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탄탄한 브랜드로 스스로의 역사를 갖고 움직여주는 콘텐츠라고 본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이 원작은 만화책이지만 영화로 나와도 열광하고, VR로 확장되어도 사람들이 반응을 해 주는 이야기이듯 말이다.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애니메이션과 학생들이 VR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그려내는 일들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는 원화가가 스토리를 짧게 잡아가는 정도로 대체하고 있는데, 전공자들이 업계에 들어오면 콘텐츠 면에서는 더 좋아질 것 같다.


송영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많이 만들어 보고, 많이 깨져 보는 일이 대학 안에서 필요할 것 같다.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 하나를 찍기 위해서도 콘티, 스토리, 카메라 촬영, 편집과 프로듀싱, CG 등 최소 6~7개의 직군이 나누어진다. 제작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고 나면 아쉬운 지점이나 보충할 부분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작은 게임을 하나 만들더라도 분업을 통해 업무 사이클을 돌려 보아야 한다. 자꾸 해보면 그 다음부터는 자기가 정말 잘 하고 재미있는 게 뭔지 발견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는 콘텐츠를 하나씩 만들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멋진 것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채용 시에도 포트폴리오를 봐서괜찮아 보이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데려온 후 가르친다.


정리 마지막으로, 독자가 만약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게 될 때 마음속에 지니면 좋겠다는 덕목 한 가지씩을 업계 선배의 입장에서 들려주셨으면 한다.


송영일 저희 회사도 작은 책상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360 영상에서 시작하여 카메라를 만들고 리그를 만들어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고 목표를 달성해나갔다. 어느 시점에 저희 회사가 고민하게 된 화두는 ‘우리 회사가 가져가야 할 경쟁력은 무엇인가?’였다. 결론은 바로 ‘가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력’이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쓰더라도 사람이 잘 찍어야 의미가 있다. 그래서 고급 인력을 영입하여 콘텐츠의 질을 기존에서 완전히 올려보자는 결정을 내렸고, 결과적으로는 편집과 앵글 면에서 진일보된 영상이 나왔다. 역시 ‘영상쟁이’란 전문 인력은 대체될 수 없구나 하는 점을 한 번 더 실감하였다. 콘텐츠 창작은 절대로 AI가 사람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감을 갖고 기본기를 다지시길 바란다.


최윤화 후배 중 최근 ‘로우로우’라는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이의현 대표가 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이 ‘존중(respect)’이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있어 결과가 아니라 과정 중심적인 사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쇼에 참가하여 개발자 모임에 가면 그들이 보여 주는 콘텐츠에 대한 태도가 너무 훌륭하다. 같은 콘텐츠를 두고 보아도 결과를 이뤄낸 과정에 대해 칭찬을 아낌없이 해 준다. 과정 중심적인 사고를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갖는다면, 자연스럽게 이 과정을 따라해 보게 된다. 그리고 창작자가 겪어낸 길을 되짚어 가다 보면 과정에 대해서도 잘 인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세와 태도가 정말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본문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