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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락거리고 소곤대는 소리에 위로받다, ASMR – 유튜브, 광고, 뉴스로 확산되는 ASMR의 세계

by KOCCA 2018. 10. 17.


8월 4일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중장년층 시청자가 생소하게 느낄 만한 코너가 등장했다. ‘소리로 더위 좀 식히세요’라는 타이틀의 이 코너는 수동 빙수기로 얼음을 가는 장면으로 시작돼서, 얼음이 컵 안으로 떨어지는 장면, 그 컵 안으로 물이 부어지며 얼음끼리 부딪히는 장면을 사람의 출연도 없이 1분여가량 보여줬다. 얼핏 보면 아무런 특징 없는 이 코너의 강조점은 소리다. 얼음이 갈릴 때의 사각거리는 소리, 얼음끼리 부딪칠 때 달그락거리는 사운드를 마치 컵에 귀를 대고 듣는 것처럼 세밀하게 포착해 들려준 것이다.



유튜브 마니아 문화쯤으로 여겨졌던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영상이 공중파 뉴스에까지 침투했다. 한국어로는 ‘자율 감각 쾌감 작용’정도로 번역되는 ASMR은 오감을 자극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감각적 경험을 일컫는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되지만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콘텐츠는 주로 소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ASMR이 학술적 근거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생활 속 소음이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온라인 토론이 이어진 끝에 2010년 제니퍼 앨런이라는 회사원이 ASMR이라는 단어로 개념화한 것이다. 다만, 최근에는 ASMR의 인기가 유튜브를 넘어 대중문화 다방면으로 뻗어나가면서 학계에서도 이를 검증하려는 시도가 하나둘 생기고 있다. 스완지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발간한 저널이 하나의 예다. 이에 따르면 ASMR 실험 참가자 90%가 몸의 한 부분에서 저릿함을 느꼈으며 80%는 기분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ASMR'(자율 감각 쾌감 작용)은 오감을 자극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감각적 경험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ASMR의 인기가 안정감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가장 인기 많은 콘텐츠는 물체를 두드리거나 종이를 찢는 등의 소리를 담은 종류다. 평상시에는 집중하지 않으면 잘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대상으로 삼는다. 사람의 소근대는 목소리도 이에 해당한다. 이 분야와 관련해 유튜브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쉽게 봤을 만한 콘텐츠로는 아이유가 등장하는 경동제약 진통제 ‘그날엔’CF가 있다. 광고에서 아이유는 문을 ‘톡톡’ 두드리더니 미닫이 문을 ‘드르륵’ 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깨가 무거운 가장 여러분”이라며 속닥인다. 기존 광고에서 최고로 중요하게 여겨진 전달력을 포기해서가면서까지 ASMR을 부각시킨 영상이다. 이 CF 시리즈는 네 편이나 제작됐으며 위의 ‘가장 편’은 유튜브 조회수가 500만을 넘는다.


먹방(먹는 방송)과 ASMR의 결합도 눈에 띈다. 인기리 방영 중인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3: 비긴즈’는 출연진들이 쩝쩝대고 후루룩거리는 사운드를 포착해낼 뿐만 아니라 막 조리된 음식이 지글거리는 소리, 젓가락이 그릇과 부딪치는 소리까지 강조한다. 연출자 최규식 PD는 “시청자들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식사 후 물을 마시는 소리도 살린다”며 “현장에서 배우들이 실제 식사하면서 내는 리얼한 소리를 잘 픽업할 수 있도록 동시녹음 팀이 좋은 장비들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밴쯔, 떵개떵, 꿀꿀선아와 같이 먹방 ASMR로 유명한 유튜버는 마이크를 입 가까이로 바짝 끌어당긴 상태로 통벌집꿀, 블랙타이거새우, 머랭쿠키 등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ASMR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영화에서도 이를 활용한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달 개봉해 약 22만명의 관객을 끈 〈속닥속닥〉이 대표적이다. 수능을 끝낸 후 귀신의 집으로 향하는 여섯 고등학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 영화는 설정 자체는 그닥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종이 위에 연필심이 갈리는 소리, 발자국 소리 등을 살려 관객을 놀래는 장면에서 소름끼치는 느낌을 부각시켰다. 〈속닥속닥〉의 최상훈 감독은 “소리가 주는 공포를 활용하고 싶었다”며 “DVD나 모바일판으로 제작할 때는 이어폰으로 ASMR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준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개봉한 또다른 공포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소리를 내면 괴물에게서 공격 받는다는 설정을 기반으로 일상의 작은 소음을 크게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ASMR이 대중문화 각 분야로 퍼지는 배경엔 안정감에 대한 갈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현택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하는 소리를 더 찾게 된다고 ASMR 현상을 해석했다.


그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관계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우리 몸에는 자율신경계가 있는데, 이는 생명 유지에 직접 필요한 기능을 무의식적으로 조절하는 체내 컨트롤 타워다. 이 자율신경계는 다시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로 분류되며 서로 길항작용(생물체 내 상쇄작용)을 한다. 교감신경은 신체가 위기에 처할 때 자극돼 체내 각 조직에 저장된 에너지원(포도당과 산소)을 인체 각 부위로 보내 신체가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게 만든다. 반대로 부교감신경은 스트레스 상황이 종료된 후 활성화돼 긴장 상태였던 신체를 안정시킨다.


최근엔 광고계에도 ASMR이 등장했다. 가수 아이유가 출연한

경동제약 진통제 '그날엔'의 ASMR CF는 유튜브 조회수 500만 회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현대 사회는 개인에게 지속적이고도 고도의 집중된 경쟁을 요구하기에, 인간은 교감신경을 만성적인 흥분 상태에 두기 쉽다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즉 쉴 때에도 교감신경이 항상 흥분 상태에 놓여 있어 편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면증 환자의 급증은 이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 통계 데이터를 보면 불면증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2012년 40만 4657명에서 2014년 46만 2099명으로 늘어났다. 급기야 2015년에는 50만명을 돌파했고,2016년에는 54만 2939명으로 치솟았다. 4년 새 환자 수가 34.2%나 증가한 셈이다.


김 교수는 “이렇게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활성화된 사람에게 인류가 원시시대부터 자연에서 편하게 들었던 소리를 들려주면 부교감신경이 강화될 수 있다”며 “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 등을 들려줬을 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라고 ASMR의 인기 요인을 풀이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붐을 타고 취향이 파편화, 개별화되는 흐름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한지수 인하대 인터렉티브 콘텐츠학과 교수(전 CJ E&M 애니메이션 사업부 본부장)는 “영상을 본다는 게 카톡을 보내는 것만큼 쉬워지다 보니 과거보다 영상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높아졌다”며정신적인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안정감을 취하기 위해 ASMR 콘텐츠를 찾는 것도 그만큼 편해졌다고 했다. 



ASMR은 집중하지 않으면 듣기 힘든 일상적 소리를 다룬다.

사람이 소근대는 소리, 물체를 두드리거나 종이를 찢는 소리 등이 주요 소재다.


향후에는 ASMR 안에서도 장르가 세분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실시간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SNS 특성상 시청자의 욕구가 보다 정확히 반영될 이다. 이를테면 최근 일부 유튜버들은 분필을 먹거나 귀를 핥는 등 일반인의 시선에서 보기엔 다소 기괴한 ASMR 콘텐츠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ASMR로 안정감을 얻음과 동시에 ‘분필을 씹었을 땐 어떤 소리가 날까’라는 궁금증을 함께 해결하는 것이다.


보다 다양한 감각으로 ASMR이 분화하는 흐름도 보인다. 채널A ‘우주를 줄게’, tvN ‘숲속의 작은 집’ 등 최근 방영했던 TV 프로그램들은 소리뿐만 아니라 영상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출연진들은 흔히 ‘빵 터지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공간 안에서 시간을 그저 흘려 보낸다. 2009년 노르웨이 국영방송 NRK는 기차가 선로를 따라가는 모습을 7시간 동안 방영하며 15%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 아사히TV는 유명 아이돌, 아나운서, 배우 등이 그저 1분 동안 동네 골목 언덕을 전력으로 달리는 ‘전력언덕’이라는 프로그램을 2005년부터 지속 방영해왔다. 김현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ASMR이 청각적 ‘멍때림(집중하지 않고 멍한 상태로 쉬는 행위)’에서 시각적 ‘멍때림’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라며 “만지기 좋은 장난감이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것처럼 향후에는 다양한 감각으로 ASMR 파생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일부 유튜버들은 분필을 먹거나 귀를 핥는 등 일반인의 시선에서 보기엔

다소 기괴한 ASMR 콘텐츠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ASMR로 안정감을 얻음과 동시에

‘분필을 씹었을 땐 어떤 소리가 날까’라는 궁금증을 함께 해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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