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위) <믹스나인>, (아래)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
<프로듀스 101>의 성공 이후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KBS2는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 JTBC는 <믹스나인>을 최근 종영하였습니다. 학생들의 장래희망 상위권이 아이돌인 대한민국에서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은 등장 때마다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두 프로그램은 화제성이 약했습니다. 연습생이나 인지도가 약한 아이돌에게 인지도를 높힐 기회를 주는 장점은 있지만, 꿈을 이뤄주겠다는 이유만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등의 문제점은 여전합니다. 왜일까요. 방송사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앞다투어 만드는 것에 대한 부작용은 없을까요? 난무하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의 명암을 짚어봤습니다.
이미지 출처 :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황입니다. 한번 데뷔했다가 실패한 이들한테 다시 기회를 주는 KBS2의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과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가 기획사를 돌며 소속 아티스트들을 심사하는 JTBC의 <믹스나인>,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Mnet의 <스트레이 키즈>는 JYP엔터테인먼트 남자 아이돌 그룹의 데뷔과정을 그리며 그 안에서 멤버 확정을 위한 오디션을 진행합니다. MBC도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2016년 방영한 <프로듀스 101>(Mnet)이 성공한 데 이어, 지난 4월 시즌2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불을 지폈습니다. 시즌1에서 발굴한 걸그룹 ‘아이오아이(I.O.I)’가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하고, 시즌 2의 보이그룹 ‘워너원(Wanna One)’이 창출해낼 가치가 3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면서,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워너원’의 경우 프로그램에서 그들을 발굴한 CJ E&M이 수익의 25%를 가져가면서 방송사 매출도 늘었습니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기획사도, 가수도, 방송사도 윈윈할 수 있는 수익사업이 됐습니다.
그러나 <프로듀스 101>이 인권 침해 논란 속에서도 고집대로 밀고 나가며 어찌됐든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만들어 성공시킨 것과 달리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과 <믹스나인>은 기존에 나왔던 익숙한 구도를 답습하며 큰 화제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대 구성부터, 피라미드식 순위발표 등 <프로듀스 101>의 인기 요소를 그대로 가져와 아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 아이돌 그룹이 멤버를 나눠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과 <믹스나인>에 나갔을 정도로 프로그램별 개성도 살리지 못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
이른바 ‘흙수저’ 기획사의 아티스트에게 전문적인 트레이닝 기회를 주고 데뷔했던 아이돌에게 패자부활전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프로그램의 의도는 좋습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은 아이돌로 데뷔했다가 실패한 이들한테 리부팅 기회를 준다는 점이 공영방송사의 취지와도 잘 맞습니다.
<믹스나인>은 여러 기획사를 돌며 데뷔를 앞뒀거나 데뷔했지만 방송 기회를 얻지 못하는 등 주목받지 못한 참가자들 중에서 실력자를 선발합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은 1차 관문을 통과한 126명 중에서 총 9명을 선발하고, <믹스나인>은 남녀 각각 9명을 선발해 성대결을 한 뒤 데뷔할 최종 한 팀을 정합니다. 10년간 데뷔한 아이돌만 426팀, “그들의 재능은 빛나야 마땅하다”는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 심사위원 비의 말처럼 실력이 있어서 데뷔까지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방송 기회를 얻지 못하고 무대에 오르지 못해 좌절한 이들을 보듬는다는 점에서 단순히 연습생이 대상이었던 <프로듀스101> 보다 가치는 더 빛납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입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과 <믹스나인>은 그 기획의도만 새롭고 형식은 기존의 포맷을 답습합니다. 특히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은 재미를 쫒자니 의미가 아쉽고, 의미를 찾자니 시청률이 안 올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입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은 참가자가 무대를 선보이는 중 관객 투표를 받아 15%당 1부트를 주고, 90%이상이 투표하면 ‘슈퍼 부트’로 심사위원 평가없이 바로 합격처리 됩니다. 슈퍼 부트를 받지 못하면 심사위원 6명이 개별 부트를 주는데, 1부트만 받아도 통과하는 등 관대한 합격 기준과 칭찬 일색인 심사평으로 다소 심심하지만, 그래도 ‘착한 오디션’이라는 인상을 줬습니다.
그러나 자극 없는 밋밋함이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아서인지, 합숙 미션으로 들어가면서는 참가자들끼리 조를 짜게 해 경쟁 구도를 만들어 갈등을 유발하는 설정을 등장시키면서 애초 색깔이 바랬습니다. <믹스나인>은 <프로듀스 101> 선정 방식에 <슈퍼스타 K>(Mnet)의 악마 편집과 <쇼미더머니>(Mnet)를 연상시키는 연출 등을 노골적으로 섞어 놓았습니다.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를 비웃는 것을 강조한 편집과, 불합격시킬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고는 합격시키는 반전 결과는 너무 많이 본 익숙한 구도입니다. 잘하는 애들은 센터에 세우고, 등급별로 무대 높낮이를 달리하는 포맷은 <프로듀스 101>입니다. <믹스나인> 주제곡인 ‘저스트 댄스’ 군무는 <프로듀스 101> 재탕 느낌이 강해 임팩트가 없고, “소년 소녀를 도와주세요”라며 시청자한테 허리 숙이는 모습은 <프로듀스 101>이 ‘국민 프로듀서님’을 강조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믹스나인>은 <프로듀스 101>을 만든 프로듀서가 연출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좌) <믹스나인>, (우)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
근본적으로 프로그램 콘셉트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없었던 듯합니다. 합격 기준이 수시로 바뀌는게 대표적입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은 한번 데뷔했지만 실패한 이들한테 기회를 주는 리부팅 콘셉트가 무색하게 갓 데뷔한 아이돌이나 배우 지망생도 통과시킵니다. 데뷔 3개월 차인 신인 걸그룹은 멤버 전원이 합격(한 명은 추가 합격)했고, 가수가 아닌데도 참가한 신인배우는 비가 “노래도 춤도 부족하다. 뽑히기 어려운 실력을 갖고 있다”고 혹평하면서도 “실력 상관없이 그 사람의 매력을 보겠다고 했다”며 합격시켰습니다. <믹스나인> 역시 “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은 뽑고 싶지 않다” 며 <슈퍼스타 K>에 나왔던 손예림을 탈락시키더니 <프로듀스 101> 등에 나온 다른 참가자들은 다 뽑았습니다. <프로듀스 101>도 배우 지망생을 합격시키면서 공정성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지만, 노래도 춤도 부족한 멤버가 연습과 노력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비난을 잠재웠습니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은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해당 참가자들을 합격시킨 명분을 아직까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믹스나인>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은 간절한 참가자들을 향한 막말 등 인권 침해 논란도 여전합니다. 참가자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듯한 연출도 문제입니다. 특히 여성 참가자들이 애교섞인 모습을 보이거나, 섹시한 춤을 추자 “<믹스나인> 하길 잘한 것 같아요”, “왜 YG가수들은 나한테 이렇게 안 해주지”라는 문제성 발언을 하는가 하면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 역시 “인형인줄 알았다”, “예쁘다”며 참가자의 실력보다 외모를 강조하는 장면이 꾸준히 등장했습니다. 실력을 등수로 매기고 무대 높낮이를 달리하는 식으로 연습생들을 계급화하고 차별하는 것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그 자체로 화제가 되고 노이즈 마케팅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후발주자들이 취지에 맞는 포맷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 없이, <프로듀스 101>의 논란까지 고스란히 차용하는 이유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형식 자체를 하나의 수익 사업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프로듀스 101>의 성공 법칙을 그대로 적용해 실패율을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방송사의 새로운 수익 사업이 되고 있습니다. 방송사는 프로그램으로 아이돌 그룹을 생산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매니지먼트사 같은 개념으로 수익의 일정 부분을 가져갑니다.
이미지 출처 : wanna one(워너원) 공식 SNS
워너원의 매니지먼트는 CJ E&M에서 대행한 YMC엔터테인먼트가 맡습니다. YMC는 워너원과 2018년 12월까지 계약을 맺고, 이 기간 동안 CJ E&M은 워너원이 벌어들이는 수익의 25%를 가져갑니다. 워너원 각 멤버들은 소속사별로 계약을 맺고 있지만, 워너원이라는 그룹일 때는 YMC와 계약을 맺고, YMC는 또 CJ E&M과 계약을 맺고 있는 4자 계약입니다. CJ E&M은 <프로듀스 101>의 활약 등으로 3분기 매출이 지난 해 같은 기간에 견줘 15% 정도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음원 수익 등도 골고루 나눈다고 하지만, 음원을 제작한 제작자이자 음원유통사이기도 한 Mnet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되며 PPL 등의 부가수익도 상당할 것입니다.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든 것 역시 이런 수익적인 부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은 최종 선발된 팀의 매니지먼트를 ‘더유닛 문화전문유한회사(문전사)’를 만들어 맡길 예정입니다. 방송사는 프로그램 제작에만 전념하고 이후 공연이나 광고 등 매니지먼트에 대해서는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국내외 공연이나 방송출연, 광고 등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지와 음원 수익 등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선발될 그룹과 문전사의 계약 기간은 13개월로 예정되어 있으나 상황에 따라서 늘어날 수 있다고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믹스나인>도 최종 우승자 9명과 7개월 간 전속계약을 맺습니다. 매니지먼트는 각 소속사가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거둬들이는 수익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방송사가 특정 기획사와 손잡고 프로그램을 통해 파생된 그룹의 매니지먼트 권한을 일정 기간 독점하는 등의 행위로 가요계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실력 있는 지망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의 미덕입니다. 연습생이었던 강다니엘은 2017년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아이돌의 꿈을 이뤘습니다. 소속사 없이 혼자 꿈을 키웠던 김재환은 <프로듀스 101>이 아니었으면 가수의 꿈을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에도 데뷔했지만 인기를 얻지 못해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지냈던 스피카(SPICA) 양지원이나, 멤버들의 연이은 결혼과 탈퇴 등으로 제대로 팀 활동이 이뤄지지 않아 어려운 시기를 겪었던 유키스(U-KISS)멤버 등이 다시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16살에 데뷔했다가 인기를 얻지 못해 실패를 맛본 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불면증 등으로 고생했다는 참가자의 고백이나 곡을 만들고도 방송 무대에 한 번도 서보지 못했다는 아이돌들이 다시 기회를 얻은 것은 그 자체로 가슴을 울립니다. 그러나 그런 참가자들의 간절함이 빛을 보려면 시청률과 화제성, 방송사 수익을 내세워 접근하는 행태는 바뀌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말 실력자를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큽니다.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지만, 예쁘고 잘 생겼으니까, 귀여우니까 뽑는 게 아니라 <케이팝스타>(SBS)처럼 정말 실력자이지만, 기회를 얻지 못한 그들한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더 유닛(스피카 양지원, 유키스 준)
방송사가 그룹의 매니지먼트사가 되어 수익의 일부분을 가져가고 일정 기간 관리하는 체제도 곱씹어봐야 합니다. 오히려 방송사들이 아이돌 생태계에 뛰어들어 경쟁을 심화시킬 것이 아니라, 난립하는 아이돌 기획사와 아이돌 문화를 재정립하는 데 일조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큽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과 <믹스나인>이 다른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랐던 점은 아이돌 산업의 현실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데뷔하고 나서도 무대에 한 번 서지 못하고 팀이 해체되기도 하고, 연습생 생활을 같이 시작했지만, 심사위원-참가자로 만나는 풍경이 나올 정도로 성공한 아이돌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믹스나인>이 기획사를 도는 과정에서 기획사 간 격차를 보여주면서 아이돌 산업 생태계 양극화도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소속사 대표가 왔을 뿐인데 다른 기획사 대표들이 긴장하거나, <믹스나인>에 뽑혀 우리 아이들한테 YG와 같은 대형 기획사의 관리를 받게 해주었으면 하는 대표들의 눈물을 보면 기획사에 들어간다고 다 데뷔하고, 데뷔한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구나하는 착잡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꿈을 향해 달리라고 말하던 기존의 프로그램과 달리,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과 <믹스나인>은 아이들한테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라고도 말합니다. 데뷔했지만,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한테 지금 이 길은 옳은 것인지, 저 많은 아이돌 동료, 선후배들 중에서 과연 나는 어느 지점에 있는 것인지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합니다. 꿈을 향한 열정이 있고, 수년간의 연습시간을 거쳐도 성공한 아이돌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출연자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시간과 열정을 바친 수많은 아이돌 지방생들을 눈물 흘리게 한 산업구조에 문제는 없는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글. 남지은(한겨레 문화부 대중문화팀 기자)
* 기사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을 따른 것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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