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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신정아 작가의 컬처멘터리] “당신을 오랫동안 기억할게요”

by KOCCA 2017. 12. 20.



다큐멘터리 <지금이라는 이름의 선물> (2015) -
 
지난 11 18,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 남현철군의 아버지 남경원 씨는 시신 없는 아들의 관 앞에서 오열했다. 환갑을 앞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단원고 양승진 교사의 팔순 노모는 영정을 부여잡고 엄마 가슴에 피가 내린다며 통곡했다. 발인식이 거행된 11 20일은 세월호 참사 1315일째 되던 날이다. 국화, 장미, 안개꽃으로 채워진 아버지의 관 속에 한 통의 편지가 놓여있다. () 양승진 교사의 딸 지혜 씨가 쓴 편지다. 슬픔을 꾹꾹 눌러 담았을 편지 봉투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2014년 봄, TV를 통해 생중계된 가슴 아픈 비극의 시간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소중한 이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무력하게 바라봐야 했던 죄책감과 미안함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은 내상을 남겼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상처이고 아픔이다. 우리는 과연 이 슬픔의 강을 어떻게 건너갈 수 있을까. 평론가 황현산은 슬픔을 연대하는 가장 지극한 마음은 기억이라고 말한다.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어떤 사람에게 현재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겠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연쇄살인의 그 참혹함이, 유신시대의 압제가, 한국동란의 비극이, 식민지 시대의 몸부림이, 제 양심과 희망 때문에 고통당했던 모든 사람의 이력이, 모두 현재에 속한다.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

-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중에서-





다큐멘터리 <지금이라는 이름의 선물>은 소아암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아들을 추모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게임 개발자 라이언의 셋째 아들 조엘은 한 살에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10개월의 힘든 투병과 치료를 받으며 노력했지만 결국 암이 재발되면서 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과 작별한다. 다큐멘터리는 라이언과 조엘의 힘겹지만 소중한 투병의 기록이자 아들의 생전 모습을 하나라도 더 담기 위해 목소리와 이미지, 아들과 함께 했던 공간들을 디지털로 기록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간다. 조엘이 떠난 후 라이언은 생전의 기록들을 담은 인디게임을 출시한다. 인디게임이란 개인이나 소규모 그룹에서 제작하는 콘텐츠로서 대규모 투자사나 퍼블리셔가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개발자의 개성과 아이디어가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흔히 게임이라는 장르가 상업적이고, 현실도피적인 성향이 강한 면이 있는데 인디게임의 경우 공익적이고 진정성을 살린 콘텐츠도 많다.



다큐멘터리 '지금이라는 이름의 선물'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That Dragon, Cancer - Official Release Trailer – 이미지 출처 : 유튜브



That Dragon, Cancer - Official Release Trailer –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인디게임 <댓 드래곤 캔서(that dragon cancer)>는 조엘의 힘겨운 투병 기록이다. 그러나 시종일관 슬픔이 주제는 아니다. 생전의 밝은 웃음소리와 가족의 애정이 담긴 시선, 조엘이 머물던 침대와 햇살 가득한 병원복도 등 게임을 하는 내내 따뜻한 감성이 흐른다. 게임 속 조엘은 얼굴이 없는 캐릭터로 재현된다. 누군가 상실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과 추억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조엘을 살리기 위한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가 신의 영역이라면, 아들을 위해 가상의 현실을 창조한 아버지의 게임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암이라는 무겁고 슬픈 싸움을 게임이라는 장르로 개발하는 것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러나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 했던 아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동작 하나하나를 새겨 넣은 아버지의 게임이 던지는 메시지는 오직 하나다.





That Dragon, Cancer - Official Release Trailer – 이미지 출처 : 유튜브



2017년의 시간이 저장된 달력도 이제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한 해의 마무리를 해야 하는 시점에 서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다만 계절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삶을 찬찬히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거센 물살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사람을 떠난 보낸 누군가는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붙잡기 위해 오늘도 사투를 벌이고 있다. 다큐멘터리 <지금이라는 이름의 선물>은 현재의 폭을 두껍게 해주는 기억의 저장소이다. 다큐의 이야기가 게임이 된 <댓 드래곤 캔서>는 그 소중한 기억 속을 유영하도록 도와주는 안내 책자이다.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어깨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