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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정지섭 기자의 아메리칸 컨트리뮤직] ‘컨트리의 성지, 음악도시 내슈빌을 가다’

by KOCCA 2017. 11. 28.



10여 년 전쯤 서울 근교의 한 도시에서 ‘음악도시로서 첫발을 디디겠다’며 야심차게 음악축제를 열었습니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이 비슷비슷한 아이돌 그룹이나 트로트 가수들을 불러다 여는 몰개성한 음악축제가 아니라, 음악전문가들이 기획자로 투입돼 그 당시만 해도 인지도보다는 음악성으로 인정받던 인디가수들, 언더그라운드 가수들, 민중 가수들을 무대에 올린 뜻 깊은 행사였어요. 오래토록 지속되기를 바랐지만 3년 정도 버티다 없어졌습니다. 취지와 콘텐츠가 아무리 독창적이어도 장소와 시기, 대중의 취향 등과 맞아떨어지지 않았던 게 단명의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음악 도시’가 되는 게 이리도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 테네시주의 주도이면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내슈빌(Nashville)은 참 운이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세계 대중음악의 본산 미국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Music City’로 불리는 곳은 이곳이 유일할 거예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음악(Music)이란 곧 컨트리를 말한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오늘은 지난 5월 여행했던 내슈빌의 기억을 여러분과 함께 짚어보려 합니다. 당시 동선을 돌이키면서 명실상부한 음악도시라는 곳의 속살, 미국 음악계에서 컨트리 음악이 차지하는 위치를 자연스레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문화콘텐츠를 통해 경쟁력을 향상시키려는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분들께 작게 나마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내슈빌 공항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내슈빌 공항에 도착한 뒤 짐을 찾으러 가는 길부터 남다릅니다. 미국 공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책-신문 판매 코너인 ‘허드슨 뉴스’는 음악도시에 걸맞게 기타와 하모니카 마이크 등의 사진을 곁들여서 ‘이곳은 음악도시’라고 알려주네요. 



내슈빌 공항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내슈빌은 미국 테네시주의 주청사와 의회가 있는 행정중심지이지만, 대표적인 관광도시입니다. 그런데 외국인이나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을 찾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아요. 관광객의 대부분은 컨트리 음악을 좋아하는, 중·장년층 부부를 중심으로 한 미국 가족 관광객들이거든요. 미국인 입장에선 대표적인 국내 여행지입니다. 그래서 다른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미국적인 것’을 경험하기도 좋고요. 피부 색깔에 따라 선호하는 음악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음악은 정치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아울러 하게 됐습니다. 



내슈빌 도심 복판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내슈빌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심 복판입니다. 다운타운(Downtown), 리버프론트(Riverfront), 브로드웨이(Broadway)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가장 멋진 명칭은 홍키통크 하이웨이(Honky Tonk Highway)일 것 같네요. 홍키통크는 지금 컨트리음악이 뿌리를 두고 있는 미국 남부 지역의 토속 음악이라고 합니다. 대로변(그래봤자 왕복 4차선 정도의 너비지만)을 사이에 두고 유서 깊은 바와 레스토랑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어느 곳을 들어가도 한 쪽에 마련된 무대에서 대낮부터 공연이 펼쳐집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지금 어느 바에서 누가 공연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도 있게 해 놓았어요.





내슈빌 ‘Municipal Auditorium’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아우라'라는 말이 있죠? 어려운 말로 광휘(光輝),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특별하고 놀라운 기운! 전 이곳을 지날 때 ‘음악도시의 아우라’라는 것을 느꼈어요. 이곳은 홍키통크 하이웨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오래된 극장 앞입니다. ‘Municipal Auditorium’이니 우리말로 ‘시민회관’쯤 되겠네요. 그 시민회관에서 지금까지 열렸던 콘서트 티켓들의 이미지로 외벽을 둘렀습니다. 어떤 가수들이 왔는지 한번 볼까요? ‘메탈리카’ ‘저니’ ‘어스 윈드 앤 파이어’ ‘브루스 스프링스틴’ ‘REO 스피드웨건’...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뮤지션들이네요? 이 아우라 가득한 극장 외벽은, 내슈빌이 ‘컨트리 음악의 성지’이긴 해도 ‘컨트리 음악만의 성지’는 아니라는 걸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내슈빌이 ‘음악도시’인 건 멋진 바와 유서 깊은 극장이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선 미국의 내로라하는 음반사들이 이곳에 둥지를 트고 있어요. 그 음반사들과 엎어지면 코 닿을 자리에 미국판 음악저작권협회라고 할 수 있는 'ASCAP(American Society of Composers, Authors and Publishers)'나 방송음악저작권을 관리하는 'BMI(Broadcast Music Incorporated)' 건물이 있습니다.  

이 음반사와 관련 단체들의 밀집구역과 홍키통크 거리는 걸어서 10여 분이면 갈 수 있고, 일반 버스, 그리고 관광버스들이 수시로 다닙니다. 음반을 기획·제작하는 음반사, 녹음하는 스튜디오, 새로 나온 음악의 반응을 떠볼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의 음악 팬들, 그리고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하면서 ‘볕들 날’을 기다리고 있을 내일의 스타들. 한마디로 음악 산업을 이끌고 나갈 모든 구성 주체들이 지근거리에 모여 있는 거대한 음악 클러스터가 바로 내슈빌입니다. 





내슈빌 중앙역 - 이미지 출처 : 정지섭 기자



이 사진은 앞으로 내슈빌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도심 한 복판에 있는 리버프론트역이에요. 내슈빌의 중앙역입니다. 이 역에서 동쪽으로 50킬로미터쯤 뻗은 철길을 따라 인근 소도시를 이어주는 통근열차가 하루 대 여섯 차례 운행합니다. 2006년에 운행을 시작한 비교적 새 노선이에요. 기차 이름이 ‘뮤직 시티 스타(Music City Star)’랍니다. Star는 우선 내슈빌을 거쳐갔던 수많은 컨트리 음악 스타들에 대한 헌정의 의미가 담겨 있고요.(컨트리 스타들에 대한 얘기는 다음 회에 할게요.) 또한 이 철도가 내슈빌과 인근 도시를 점차 하나의 생활권으로 통합시켜가는 확장 계획의 시작(Start)이라는 뜻, 그리고 지금은 직선인 철길이 결국은 촘촘하게 이어지며 별(Star)모양이 될 것이라는 의미도 함축돼 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도시의 정체성을 주입하려 애쓰는 이런 노력들이 참 멋져 보여요. 모름지기 요즘은 디테일의 시대니까요. 다음 회에는 내슈빌을 거쳐갔고 또 거쳐갈 숱한 컨트리 음악인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던 공간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Dolly Parton and Kenny Rogers - Christmas Without You (1984)> 중에서 - 영상 출처 : 유튜브 



마지막으로 음악 한 곡 소개하면서 마칠까 해요. 성탄절이 다가오는 만큼 캐롤로 준비했어요. 그대가 없는 크리스마스는 어떨까요? 컨트리 음악계의 든든한 원로 케니 로저스와 달리 파튼의 ‘Christmas Without You’라는 노래 들려드릴 게요. 30년쯤 된 음악이지만,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선율이 참 아름답습니다. ‘크리스마스엔 누구도 혼자일 수 없다’고 되뇌는 달리 파튼의 속삭이는 목소리도 참 아름답고요. 그럼 다음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