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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1인 미디어의 역사 혼자 만들고 세계가 즐긴다

by KOCCA 2015. 9. 7.

1인 미디어의 역사, 혼자 만들고 세계가 즐긴다


글 이명석 문화비평가



"지난 6월, 로스앤젤레스의 한 주택 차고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들어섰다.

코미디언 마크 마론이 팟캐스트 방송을 위해 스튜디오로 개조한 공간이다. 대통령은 민생 시찰을 위해

아마추어 방송국을 방문한 걸까? 아니다. 그를 불러들인 것은 한 달에 500만 번 이상 다운로드되는

팟캐스트 <WTF with Marc Maron>의 막강한 영향력이었다"


창작자와 소비자, 벽을 넘다

  <WTF with Marc Maron>은 이미 여러 유명 인사의 ‘힐링 캠프’ 구실을 해왔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자살하기 4년 전에 알코올중독으로 고통받았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코미디언 루이스 C. K.가 자신의 상처 난 우정에 대해 고백하며 눈물을 터뜨렸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소식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 다. 그것은 1인 미디어 시대가 왔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당신에게도 이와 비슷한 꿈이 있을지 모른다. 스케치북에 끄적인 만화, 기타 반주로 어설프게 녹음한 노래, 친구들과 만들어본 개그 영상…. 이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꿈. 좀 더 욕심내자면 그 창작 활동을 생업으로 삼고, 나아가 인기 스타가 되면 더욱 좋겠다는 꿈. 희소한 확률이지만 지레 포기할 필

요는 없다.

  과거에는 덩치 큰 미디어의 간택이 필요했다. TV, 라디오, 신문처럼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과 설비를 갖춘 매스미디어를 통해 콘텐츠를 유통시켜야 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적지 않은 운도 따라주어야 했다. 때론 예민한 개성을 둔탁하게 깎아버리는 수모도 각오해야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창작자와 소비자 사이에 놓인 벽이 슬슬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 혹은 소수의 힘으로 만든 글, 사진, 음악, 방송 등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활짝 열린 것이다. 키우는 고양이가 ‘몸 개그’ 하는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더니, 일주일 뒤 그 영상이 조회수 수백만을 기록하고 세계적인 기업들로부터 광고 출연 제의를 받는 것도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 되었다. 희소한 확률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기술의 시혜 덕분이 아니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애써온 창작자들의 열망, 노력, 실험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1인 미디어는 21세기의 산물인가?

  사실 1인 미디어는 21세기의 창조물이 아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자화상’ 등 윤동주의 주옥같은 시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려졌을까? 윤동주는 자작시를 고르고 손으로 베껴 세 권의 시집을 만들었다. 하나는 자신이 가지고, 나머지 둘은 이양하와 정병욱에게 건네주었다. 그중 정병욱이 받은 원고가 살아남아 유고 시집으로 나올 수 있었다. 활판 인쇄가 대중화된 이후에도, 철판에 글자를 새긴 뒤에 등사기로 밀어서 만든 작은 출판물이 꾸준히 나왔다. 학교, 교회, 동호인들의 작은 미디어였던 것이다. 군사 정권이 언론을 통제하던 시대엔 이런 등사 유인물이 오늘날의 SNS와 개인 방송 역할을 했다.

  현대의 기술은 이런 창작자들의 욕망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왔다. 복사기, 워드프로세서, 그리고 마침내 퍼스널 컴퓨터와 프린터가 등장했다. 혼자서도 신문이나 잡지 형태의 출판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 형성된 방식이지만, 지금도 코믹 마켓 등에서는 이와 비슷한 형태의 만화 동인지나 자작 출판물이 유통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개인으로서는적지 않은 제작비를 투입해 만든 이런 보물들이 재고가 되어 쌓이면 애물단지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PC 통신은 그런 고통을 날려버릴 신세계의 작은 문을 열었다. 비록 개인이 올릴 수 있는 콘텐츠의 형식은 텍스트밖에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이 과도기의 매체는 동호회나 게시판 같은 집단 미디어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머리말 같은 걸 붙여 개인적인 콘텐츠를 주고받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었다. 연속적인 독자를 대상으로 연속적인 내용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독자가 늘어나도 제작이나 유통 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만들어낸 콘텐츠를 신문 잡지 투고나 공모전을 거치지 않고 바로 전국 단위의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큰 자극이었다.



인터넷 시대의 개막과 1인 미디어의 변화상

  인터넷 시대가 본격화하자 곧바로 개인 홈페이지와 웹진 붐이 일어났다. 거대 미디어에 대항해 작고 독립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전파하고자 하는 욕망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던 것이다. 고정된 서체의 텍스트 환경에서도 벗어났고, 다양한 형태의 컬러 디자인에 텍스트와 이미지를 접목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만의 도메인을 통해 독자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큰 매력이었다. 그러나 웹진과 홈페이지 붐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개인이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다는 기술적 가능성이 필연적으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과연 아마추어가 만든 콘텐츠를 대중이 원하느냐? 어느 정도 가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한다고 해도, 창작자가 그 콘텐츠로 수익을 얻지 못한다면 자발적으로 무료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할 수 있을까? 결국 취미 생활로 글을 써서 올리고, 그 취미에 관심 있는 친구들만 찾아보는 자족적 활동에 그치기 십상이었다. 개인 홈페이지는 문패만 남긴 황량한 땅이 되었고, 사람들은 프리챌, 다음 카페 같은 커뮤니티에 다시 집결하거나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같은 친목 놀이로 흘러갔다.

  얼마 뒤 포털과 결합된 블로그 서비스가 진격해왔다. 이들은 개인 홈페이지의 큰 약점을 보완했다. “홈페이지의 서버를 관리하고 웹디자인을 해야 하는 등의 기술적인 문제는 신경 쓰지마세요. 여러분은 콘텐츠 제작에만 집중하세요. 또한 포털의 트래픽을 활용해 개별 블로거들이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요리, 집안 꾸미기, 사진 등 특정 주제의전문적인 블로거들이 인기를 모으게 되었고, 출판, 공동 구매 등의 형태로 수익을 올릴 프로세스도 생겨났다. 물론 블로그 활동을 생업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결코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가능성이 열렸기에 많은 콘텐츠 제작자의 창작

본능을 일깨울 수 있었다.


  이들은 머지않아 텍스트와 이미지만이 아니라, 음성과 영상이라는 수단도 사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신문과 잡지를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라디오와 TV와 영화관까지 대체하고자 한 것이다. 영화 <볼륨을 높여라>에서 볼 수 있듯이 소규모 지역 라디오는 거의 개인 방송국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영상에 비해서는 음성이 훨씬 낮은 기술력으로도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1995년경부터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 존재해왔다. 블로거들은 자신의 콘텐츠 중간에 오디오 파일을 끼워 넣기도 했는데, 특히 저널리즘 블로그의 경우 인터뷰한 육성 그대로를 전달하기를 원했다. 소규모 라디오 방송국 운영자들 역시 자신이 이미 만들어둔 콘텐츠를 인터넷에 올려 청취자의 영역을 넓히고자 했다. 2004년부터 본격화한 팟캐스트 방송은 새로운 전기가 된다. 미리 녹음・제작된 내용을 mp3 같은 형태로 전송받아 청취하도록 했는데, 2004년 9월 ‘팟캐스트’라는 단어의 검색 결과는 24건에 불과했지만 9개월 뒤 1000만 건이 넘을 정도로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장거리 자동차 이동이 잦은 미국의 경우 라디오나 오디오북 같은 듣기 문화가 선행되었기 때문에 팟캐스트의 전파 속도도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2011년경에 와서야 정치적 국면과 결합되어 본격적으로 유행한다. 애플의 아이튠즈에 한정되어 있던 플랫폼을 벗어나 팟빵 등의 국내 서비스도 본격화되었다.



본격, 소셜 크리에이터의 시대

  동영상 기반의 1인 미디어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5년이다. 그해 런던의 폭탄 테러와 미국 남부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 때 주변의 시민들이 찍은 동영상이 뉴스 보도에 적극 활용되었다. 같은 해 페이팔 직원이던 채드 헐리와 스티브 첸이 파티 영상을 이메일로 주고받는 것보다 웹상에서 바로 공유하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유튜브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UCC라는 용어로 통용되는 이런 영상들은 초기에는 애완동물, 아이들의 공연, 파티장의 실수 등 홈비디오 식의 소박한 에피소드 위주였지만, 점차 상업적 가능성을 가진 콘텐츠로 발전했다. 특히 스마트폰의 보급과 컴퓨터 편집 기술의 일반화는 누구나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작은 영상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3~5분 내외의 러닝타임은 출퇴근 시간이나 약속 시간 사이 같은 짧은 틈에 소비하는 스낵컬처에 딱 맞아떨어지는 장치가 되었다. 동영상의 특성상 프로와 아마추어의 장비와 기술 수준의 차이가 적지 않지만, 그것도 점점 좁

혀지고 있다. EXID라는 걸그룹을 오랜 무명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공연장을 따라다니며 ‘직캠’ 활동에 열정을 보여온 개인 창작자의 작품 덕분이었다.

  현재 가장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는 콘텐츠 플랫폼은 인터넷 개인 생방송이다. 그동안의 동영상 콘텐츠가 녹화・편집된 방송을 업로드한 뒤 스트리밍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 생방송으로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초기에는 스포츠나 게임 중계를 같이 보면서 BJ의 해설이나 멘트를 즐기는 방송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먹방, 쿡방, 영어 강의, 개그 등으로 장르를 넓혀가고 있다. 심지어 다양한 콘텐츠를 집약한 작은 버라이어티 쇼도 가능하다. 가장 큰 매력은 시청자들이 채팅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반응과 요구를 전하고, 진행자는 그에 따라 즉흥적인 변화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수익 창구 또한 별풍선 같은 실시간 상호 교류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포맷은 지상파 채널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모방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그동안 거대 미디어를 흉내 내온 1인 미디어가 역으로 거대 미디어에 영향을 줄 정도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다.


5년 후, 1인 미디어는 어떤 모습일까?

2009년의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는 두 명의 요리사가 나온다. 하나는 1950년대 프랑스 요리사로 명성을 떨친 줄리아 차일드. 그녀는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갔다가 심심함을 이기기 위해 요리 학원에 가고, 점차 자신만의 요리법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녀의 솜씨가 입소문을 타면서 출판사와 계약하게 되고, 그녀는 요리를 하나씩 만든 뒤 사진을 의뢰해서 찍는 등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요리책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21세기의 줄리는 줄리아의 레시피를 하나씩 요리로 만들어 블로그에 올리는 것만으로 수많은 이에게 자신의 요리 솜씨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영화를 지금 다시 찍는다면 블로그는 식상하다. 아마도

‘BJ 줄리의 쿡방’을 만들어 개인 생방송을 하는 모습으로 나와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 5년 뒤에 줄리는 더욱 쉽고 편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요리 팬들과 만나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 위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하는 격월간 콘텐츠 전문 매거진 <케이콘텐츠>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사진출처

- 콘텐츠케이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