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강남 스타일>을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2012년에 공개된 이 히트곡은 유튜브에서 무려 20억 뷰를 기록하며 조회 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수 싸이의 곡입니다. 많은 외국인이 패러디 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해서 화제가 되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강남’이 무슨 뜻인지 몰라 엉뚱한 발음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강남 스타일은 왜 하필 ‘강남’ 스타일이 되었을까요? 강남은 서울, 그중에서도 한강 이남의 특정 지역을 일컫는 지명으로서 젊음과 유흥, 그리고 패션의 중심지로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강남 스타일’이라 불리는 것은 최신 유행이며 패셔너블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강남’이라는 장소가 품고 있는 문화적 맥락이 노래 속에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처음에 많은 외국인이 ‘강남’을 몰랐었지만, 현재는 노래의 인기 덕에 강남을 알고, 그 속에 담긴 맥락을 이해하게 되고 심지어는 직접 방문해 보는 외국인들도 늘어났습니다.
이와 비슷한 현상으로, 최근 한국 콘텐츠들의 제목이 특정 장소에 역사적 또는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며 지어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 트렌드는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그중 많은 수가 인상적인 흥행을 누리고 있는데요.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콘텐츠 창작자들은 장소적 배경에 중심을 두고 콘텐츠를 만들어 낼까요? 지금부터 몇 가지 최근 콘텐츠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영상1 <광화문에서> 뮤직 비디오
첫 번째 콘텐츠로 슈퍼주니어의 멤버 규현의 솔로곡 <광화문에서>입니다. 이 앨범은 11월 가온차트에서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각종 음원 사이트와 음악방송에서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이자 조선 왕이 주로 출입하는 문이었습니다. 그리고 4개의 성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문이기도 합니다.
▲ 사진1 광화문
현재 광화문은 서울의 중심 지역에 있으며, 성문 앞에는 광화문 광장도 생겨났습니다. 광화문 광장은 현재 서울 시민들에게 있어 문화와 소통의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각종 행사, 축제 등이 열리기도 합니다.
더불어, 이 장소는 만남의 광장입니다. 서울 중심지에 위치한 덕분에 교통도 편리하고, 주변에는 경복궁이나 세종문화회관, 그리고 북촌과 같이 가볼 만한 장소들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광화문은 근처의 큰 빌딩들과 회사가 많아 주중에는 직장인들로 붐비지만, 주말에는 친구, 가족, 그리고 연인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 사진2 광화문 광장
특히 광화문 주변의 넓은 대로는 연인들이 로맨틱한 산책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밤에는 광화문에 서 켜두는 조명 덕에 야경도 멋집니다. <광화문에서>가 주목하고 있는 문화적 맥락도 바로 이 점입니다. <광화문에서>는 광화문에서 헤어진 연인과의 옛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가사를 보면, “그 손 잡고 걷던 기억에 또 뒤돌아 봐…광화문 이 길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봐 네가 서 있을까 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광화문에서>의 인기 비결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규현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더해진 광화문이 지닌 장소로서의 의미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연인이라면 한 번쯤 해 봤을 법한 광화문 데이트, 그리고 그들만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광화문에 관한 기억들이 규현의 노래에서 스며 나와 자꾸만 더 듣고 싶게 만드는 것이죠.
▲ 사진3 <국제시장> 공식 포스터
두 번째로 소개할 콘텐츠는 영화 <국제시장>입니다. <국제시장>은 부산에 자리한 부산국제시장을 주 무대로 하고 있으며, 2014년 12월 개봉했습니다. 개봉 이후로 <국제시장>은 3주나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했으며, 누적 관객 천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또한, 최근 미국의 40개 관에서도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한국 근대사의 격동기라 할 수 있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살았던 우리 세대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부산국제시장 또한 특정한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장소입니다. 부산은 한국의 주 항구도시로서, 외국의 최신 문물이 들어오는 창구였습니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 이후로, 부산국제시장은 갓 태어난 대한민국의 급격한 발전을 위해 수많은 물건이 수입되고 유통되던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 사진4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부산국제시장
특히 60년대와 70년대를 살았던 지역 주민들에게 있어, 부산국제시장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자 삶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장사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시장에서 물건을 사며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는 국제시장의 이러한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덕수는 아버지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국제시장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가장입니다. 부산에 살았던 세대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죠.
또한, 부산국제시장은 우리 아버지 세대에게 있어 삶의 모든 것이었던 ‘가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주인공 덕수에게 있어서 국세시장에 있는 가게 ‘꽃분이네’는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희생하며 가게를 지키려 하지만, 노인이 되어 결국 가게를 팔게 됩니다. 그는 아버지를 놓아드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가게도 떠나보냅니다. ‘가족’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또한 우리 세대 아버지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입니다.
▲ 사진5 부산국제시장 먹자골목
최근의 부산국제시장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지만, 동시에 외국인들과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춰 진화하고 있는 관광지이기도 합니다. 부산 여행의 필수 코스로써, 그 중에서도 특히 먹거리가 유명합니다. 많은 관광객이 독특한 길거리 음식과 저렴한 가격으로 쇼핑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고 있습니다.
▲ 사진6, 7 <청담동 스캔들>과 <압구정 백야> 공식 포스터
마지막으로 소개할 콘텐츠는 TV 드라마 <청담동 스캔들>과 <압구정 백야>입니다. 모두 22.1%와 14.4%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인기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들은 서울의 남쪽 행정 구역인 청담동과 압구정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지역 모두 강력한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부자들이 사는 지역’이라는 속설입니다. 이 지역은 서울의 중심 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매우 높은 땅값을 자랑하기 때문에 흔히 ‘부자 동네’로 인식되곤 합니다.
▲ 사진8 청담동 패션거리
이러한 인식 때문에, 청담동과 압구정동은 쇼퍼들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청담동 패션거리에는 프리미엄 백화점과 명품샵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으며, 예쁜 카페들과 레스토랑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들만 이 지역에 방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이들은 부와 권력에 대한 꿈을 가지고 압구정동과 청담동에 들어서기도 합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지역은 모든 욕망이 모여드는 장소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동경과 비판, 양쪽 의견이 모두 존재하며, 많은 콘텐츠 창작자들이 이 사실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청담동과 압구정동은 큰 상징적 의미가 됩니다.
<청담동 스캔들>과 <압구정 백야> 또한 청담동과 압구정동이 가진 문화적 맥락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청담동 스캔들>은 청담동의 부유하고 저명한 집안이 추악한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청담동은 각종 사악한 욕망과 비밀들이 화려한 베일 속에 갇혀 있는 상징적 장소로 등장합니다. <압구정 백야> 또한 부유한 상류층 집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바탕으로, 압구정동은 물질적 풍요와 애정 결핍을 상징합니다.
지금까지 장소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살펴보았습니다. 최근 한국 콘텐츠 창작자들이 활발하게 구체적인 장소적 배경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트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콘텐츠 제작자들은 왜 장소적 배경을 강조하게 되는 것일까요.
먼저,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경험적 지식이 콘텐츠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문화로 인해, 콘텐츠 소비자들은 이 장소들에 대해 이미 들어봤거나 가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제작자들은 이 상징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이 장소들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자극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기억을 끄집어내어 그 콘텐츠 안에 녹아 있는 자신을 볼 수도 있죠. 현실과의 연결 고리 때문에, 콘텐츠는 더 쉽게 이해되고, 오래 기억되고, 인상적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콘텐츠는 사람들의 실제 행동을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콘텐츠가 유명해지면 사람들은 이 장소에 흥미를 갖고, 그 중 일부는 그곳에 실제로 방문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조사에 따르면 2012년 <강남 스타일> 이후로 2013년 강남구의 방문객은 4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또한 부산국제시장의 방문객도 영화 상영 이후 3배 이상 증가했다는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이 현상은 다시 콘텐츠의 흥행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구체적인 장소를 강조하는 콘텐츠들은 현실과의 효과적인 연결고리 덕분에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고리가 콘텐츠들을 더 강력하고 견고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죠. 이 경우, 콘텐츠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에서 그 연결 고리를 발견할 때마다 계속해서 생생하게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어느 장소든 하나 이상의 기억과 추억 등을 담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어떤 장소와 콘텐츠가 사람들의 가슴과 기억 속에 남게 될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 사진 출처
- 표지 YG 엔터테인먼트
- 사진1 한국관광공사
- 사진2 한국관광공사
- 사진3 <국제시장> 공식 홈페이지
- 사진4 <국제시장> 공식 페이스북
- 사진5 한국관광공사
- 사진6 SBS
- 사진7 MBC
- 사진8 한국관광공사
ⓒ 영상 출처
- 영상1 SM 엔터테인먼트
ⓒ 참고 자료
- <시장 방문객 3~4배 급증… 상인들 "요즘 일할 맛 나네예" 콧노래> 한국일보, 2015.01.15
- <“다양한 한류 콘텐츠로 관광 강남스타일 만들 것”> 주간동아,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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