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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방송 영화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김기덕 감독의 충격적 영화 <뫼비우스>의 의미는?

by KOCCA 2013. 9. 12.

 

 

 

김기덕 감독의 신작인 <뫼비우스>는 개봉 전부터 모든 영화인들과 영화팬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받았었죠. 바로 ‘제한 상영가’라는 다소 생소한 등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한 상영가란 제한된 상영관에서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등급으로, 청소년 관람 불가보다 훨씬 높은 등급이라고 할 수 있죠. 이 문제가 크게 회자되면서 영화계에서도 ‘과연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답니다. 그럼 이 영화가 그런 위험한 등급을 받을 정도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사진2 영화 <뫼비우스>

 

 

◎ 오이디푸스와 거세불안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영웅입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불운의 영웅이죠. 프로이트는 이런 그를 예로 들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중요한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만들어 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자 아이가 아버지를 적대시하고 어머니를 향해 가지는 무의식적인 성적 욕망을 이야기합니다. 이 영화의 뿌리도 이런 개념과 연관이 깊다고 할 수 있죠.

 

여기에 더해서 거세 불안에 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거세불안’ 역시 남자 아이가 어머니를 향해 가지는 성적 욕망과 연관된 개념이랍니다.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망이 죄책감, 죄의식 등으로 발현되면서 아버지에게 공포를 느끼게 되는거죠. 이런 개념들이 만나서 욕망이 되고, 곧 이 영화의 핵심을 해석하는 키워드로 쓰인답니다.

 

 

◎  아들과 아버지


▲사진3 영화 <뫼비우스> 스틸컷

 

이 영화의 핵심에 서있는 두 인물은 ‘아들’과 ‘아버지’입니다. 모든 문제는 ‘아버지’로 시작해서 ‘아들’로 귀결된답니다. 시작은 아버지의 과오입니다.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 대한 분노가 아들에게 표출되면서 영화는 욕망이라는 긴 레이스의 출발선에 섭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아버지는 죄책감을 가지고 아들에게 헌신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곧 이 ‘사랑’이 문제가 되어서 다시 아버지와 아들은 갈등 상황에 마주하게 되죠.

 

‘가족’ 그리고 ‘부자’ 라는 틀 안에서 욕망과 갈등을 마구 얽혀서 쏟아집니다. 그게 바로 영화의 제목인 뫼비우스의 첫 번째 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는 유독 상징적인 요소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게 영화가 부담스러워지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면 같지만 결과적으론 같은 면을 볼 수밖에 없는 뫼비우스의 구조와 닮은 부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 스스로가 생각하고, 느끼게 만드니까요.
 

 

여자, 어머니, 모순


▲사진4 영화 <뫼비우스> 스틸컷

 

핵심에 ‘아들’과 ‘아버지’가 있다면 핵심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곳에는 여자가 있습니다. 여자의 상징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를 위한 중요한 장치가 들어가기 때문이죠. 그 장치는 다름 아닌 여자의 ‘1인 2역’에 있습니다. 여자라는 객체의 모습과 아내 혹은 어머니라는 새로운 자아를 한 여자로 표현을 하면서 같으면서 다른 존재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감독의 의도적 장치라고 할까요?

 

서로 다른 캐릭터를 똑같은 배우가 연기를 하면서 어머니와 여자라는 두 가지 존재에 대한 모순을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관객에게 던진 직구입니다. 과연 지금 당신이 영화에서 보고 있는 것이 여자의 욕망인가, 어머니의 모성애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거죠. 이곳에서부터 영화의 혼란은 가중되는데요. 어찌 보면 이것도 뫼비우스 구조와 같다고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결국은 어느 쪽에서 시작하건 시작한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는 질문이니까요.


 

욕망의 고리

 

▲사진5 영화 <뫼비우스> 스틸컷

 

그럼 이 모든 모순을 연결하는 건 무엇일까요? 네, 욕망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죠. 그중에서도 <뫼비우스>는 성적 욕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성기 없는 쾌감’, ‘온몸이 성기다’라는 단어를 노출하면서 과연 욕망의 근원은 어디인가 하는 고민을 합니다. ‘성기’가 없다고 해서 성적 욕망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거죠.

이런 여러 욕망과 관련해서 영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가장 기본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결과적으로 모든 바탕에는 성욕이 있고, 그 욕구라는 것이 끝나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뫼비우스 띠와 같은 구조로 돌고 있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발현되어도 같은 위치, 같은 면이라는 거죠. 그게 바로 ‘뫼비우스’ 니까요.

 

 

뫼비우스의 철학적 해방

 

▲사진6 영화 <뫼비우스> 스틸컷

 

 

 

사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부담스럽습니다. 많은 상징과 충격적인 내용으로 관객을 괴롭히는 영화죠. 대부분의 예술 영화가 요구하는 것 이상의 생각을 요구한다고 할까요. 더불어 대사 한마디도 없이 진행되는 다소 실험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장면, 장면 놓치지 않기 위해 상당한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영화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김기덕 감독 특유의 거친 호흡법으로 인간에 존재에 대한 애정을 기저에 깔고 만들어진 영화니까요.

 

 

◎ 사진출처

- 사진1-6 영화 <뫼비우스>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