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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의 무게 :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 <살인의 추억>부터 <남영동 1985>까지!

by KOCCA 2012. 11. 19.

 

 

 


 만일 영화가 끝난 후 어떤 한 문장을 스크린에 올리는 것 만으로 영화가 가진 재미를 두 배로 증폭시킬 수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이 문장이 검은 화면에 뜨는 순간 그 영화가 감동적인 영화였다면 관객이 느낀 감동은 두 배가 되고, 무서운 얘기라면 무서움이 두 배, 슬픈 얘기라면 슬픔이 두 배가 될 겁니다. 예상하신 분도 있겠지만 이 마법의 한 문장은 바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랍니다.
 이렇듯, 영화의 소재로서 '실제 이야기(실화)'라는 것은 영화가 가진 정서를 강력하게 증폭시키는 동시에 영화 자체의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들이 참 많은데요. 그 가운데서도 실화가 가지는 위력을 보여주는 영화, 또 보여줄 영화 몇 편을 골라 봤습니다.

 


실화의 힘, 첫 번째 : 잊혀지지 않도록  - 영화 <살인의 추억>과 영화 <그 놈 목소리>

 

▲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 <살인의 추억> 中


 2003년, 많은 관객들이 꼽아준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명장면은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형사 역할을 맡은 배우 송강호가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행적을 전해 들으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본 그 순간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잡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놓치고 만, 영원히 잡을 수 없는 범인에 대해 궁금해 하는 퇴직 형사의 얼굴이 관객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가 가진 탄탄한 이야기의 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영화의 실제 소재가 된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영구미제로 남은 사건이라는 것을 관객들 모두가 알고 있기에 형사의 그 마지막 표정은 우리 모두의 표정이기도 한 겁니다. 이처럼 실화는 영화의 내용을 더욱 더 강렬한 체험으로 바꿔 우리에게 전달해 줍니다.

 

 

▲ 영화 속에서도, 실제로도 '목소리'만 남은 '그 놈'의 이야기. 영화 <그 놈 목소리>


 관객들을 함께 분노하게 하는 대상은 살인을 '추억'하며 유유히 사라져 버린 영화 <살인의 추억> 속 범인 뿐 만이 아닙니다. 영화 <그 놈 목소리>에서 등장하는 유괴범도 관객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킨 대상입니다. 하루 아침에 어린 아들을 잃은 영화 속 부모와 함께 관객들은 영화 러닝 타임 내내 뛰고 기도하고 속을 태우게 되는 데요. 결국 보호받아야 할 한 어린 아이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아이의 부모도, 관객도 그 누구도 '그 놈'을 직접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금품을 요구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건 그 놈의 '목소리'만이 현재 남아 있는 단서가 될 뿐입니다. 영화 마지막에는 실제로 협박 전화를 걸었던 범인의 목소리가 공개되기도 했는데요. 영화관을 나서서도 절대 잊지 말아 달라는 '그'의 목소리는 실제 유괴 사건이 발생했을 때 녹음된 생생한 육성이기에 관객들은 이 소름끼치는 유괴담에 다시 한 번 간담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천벌을 받아야 할 두 범인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실화의 힘, 두 번째 : 감동 2배, 공감  2배  - 영화 <말아톤>

 

▲ 영화 <말아톤> 과 영화 속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 씨와 어머니.


"초원이 다리는 백 만불 짜리 다리!"
 영화 <말아톤> 속 명대사죠? 극장을 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 준 이 따듯한 영화 <말아톤>은 개봉당시 (2005년) 5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그 해 대종상에서는 무려 7개 부문에서 수상을 했는데요. 흥행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던 데는 탄탄한 영화의 완성도도 한 몫을 했지만 그 완성도에 '실화'라는 감동의 무게가 더해진 덕분입니다. 영화 <말아톤>은 실제로 자폐증을 갖고 있지만 아마추어 마라토너 활동한 배형진씨와 배형진씨의 든든한 서포터였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성인 발달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적응하여 살아가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과 가족들의 생활이 진솔하게 그려진 영화 <말아톤>은 이후 성인 발달장애에 관한 일반의 인식을 언급할 때 주요한 레퍼런스가 되고 있습니다. 실화라는 점이 영화가 전달하는 감동을 증폭시킬 뿐 아니라,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웃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어준 것이지요. 대중장르로서 영화가 가진 힘이 긍정적으로 작용된 사례이기도 합니다.

 


실화의 힘, 세 번째 : 공분 (함께 분노하게 하다) - 영화 <도가니>

 

▲ 영화 <도가니> 속 분노의 클라이막스, 법정 공판 장면

 


  영화 <도가니>는 광주 인화학교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소설가 공지영씨의 소설 <도가니>가 원작으로, 소설은 실제로 장애 아동을 상대로 벌어졌던 성추행 및 성폭행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개봉 이후 영화의 내용이 실화에 기초하고 있따는 사실이 알려 지면서 네티즌들과 관객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는데요. 영화 속 아역배우들의 표현 수위 논란에서부터 원작 사건의 재판에 대한 관심까지 , 영화 <도가니>는 대한민국을 사건 속 가해자 들에 대한 분노로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제작 당시에도 진행중이던 재판에서는, 최근에 법원이 검찰이 구형한 형량보다 더 높은 형을 선고하여 영화 <도가니>를 통해 고발된 지적 장애아에 대한 성폭행 사건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제작사에서는 이후, 흥행 수익금 일부를 직접 실제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는데요. 영화의 배경이 된 인화학교 장애우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기부 행사가 열리는 등, 영화의 제작으로 뒤늦게나마 피해자들에 대해 도움이 손길이 닿기 시작한 것이죠. 영화가 사회에 이 끔찍한 사건을 뒤늦게나마 더 널리 알린 것이 힘이 되어 준 것입니다.

 


실화의 힘, 네 번 째 : 고발 - 영화 <남영동 1985>

 

 

 영화 <부러진 화살>로 치열한 법정 드라마를 그렸던 정지영 감독의 신작 <남영동 1985> 은 이번엔 군부독재 시절, 대공분실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가족들과 목욕탕을 다녀 오는 길에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간 곳에서 영화 러닝 타임의 80~90%를 처절히 고문당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우리에게서 잊혀져가고 있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시대의 아픔에 대해 그리고 있습니다. 고(故) 김근태 의원의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지만 실제 고문피해자였던 김근태 의원의 이름을 사용하는 대신 극중 고문 피해자의 이름을 '김종태'로 사용한 것도,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으로 이 고문 사건을 조명하고자 했던 제작자의 의도라고 합니다. 관객들이 영화 속에서 마주치는 고문장면은 모두 실제 이루어졌던 것들이라고 하는 데요.  실화의 무게가 전달할 묵직한 충격과 슬픔이 또 한 번 관객과 우리 사회를 흔들 수 있을까요? 해답은 영화 <남영동 1985> 속에 있습니다.

 


이상으로 알아본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우리 영화들이었습니다. 실화라서 더 감동적이고 실화라서 더 무서운 이야기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남다른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현실과 예술이 영향력을 주고 받으면서 사회는 더 좋은 곳으로 발전해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제작자들이 활발히 좋은 소재를 현실에서 발굴해서, 진한 여운을 주는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