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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게임

도약하는 e스포츠와 달라진 프로게이머의 위상

by KOCCA 2018. 11. 7.


"게임 좋아하는 아들을 나무라기만 할 게 아닌거 같아요. 

상혁 선수(SK텔레콤소속스타게이머)처럼 클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겠어요."


온라인 맘 카페에서는 달라진 e스포츠(electronic sports)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는 글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인의 스포츠 축제인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가 처음으로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것도 계기가 됐다. 게임으로 승부를 가리는 e스포츠는 이를 지켜보며 응원하는 팬들이 있다는 점에서 유저가 각자 즐기는 게임으로부터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1998년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가 출시한 ‘스타크래프트’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국내에서도 게임 문화가 시작됐다. 인기는 자연스럽게 게임대회로 이어졌고, 이를 지켜보는 스포츠 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는 e스포츠의 원형이 된 게임으로 통한다. 이 시기 e스포츠라는 용어도 탄생하고 이를 중계하는 e스포츠 방송국들도 우후죽순 생겼다. 그렇지만 e스포츠가 과연 스포츠인가를 두고 논란은 여전했다. ‘남이 게임하는 걸 왜 보는지 모르겠다’라든가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가’ 같은 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e스포츠가 목표에 도전해 스코어(결과)로 정의되는 점, 광고·관전료 등을 벌어들일 수 있는 리그를 통해 사업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 스타선수의 경기를 통해 게임에 몰입하게 하는 관전 재미가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의 속성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한다.



이제 스무 살이 된 e스포츠는 오는 2022년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데뷔를 앞두고 있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e스포츠에서 겨루는 주요 게임(종목)에서 신(神)으로 불리는 게이머들을 대거 배출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6개 종목 중 하나였던 리그 오브 레전드(LOL, 라이엇게임즈의 PC 온라인게임)의 이상혁 선수는 과감하면서도 창의적인 플레이로 ‘e스포츠계의 메시’로 불린다. 그의 연봉은 45억~50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프로 스포츠에서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 프로야구 이대호(롯데) 선수(25억원)의 두배, 국내 프로 e스포츠 선수들의 평균 연봉(9770만원,한국콘텐츠진흥원조사)의 50배에 달하는 규모다. 스타크래프트 이후 ‘게임은 한국인이 최고다’는 명성은 계속되고 있다.

 

2015년 9월 블리자드는 PC 온라인게임 ‘월드오브 워크래프트(WOW)’에서 ‘무쇠결속  망령군마’라는 아이템을 개발해 공개했다. 무쇠결속 망령군마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 왜곡의 훈장’이라는 아이템 5000개를 먼저 획득해야 했다. 이 때문에 해외 유저들은 “8개월이나 걸릴 것”이라며 항의했고 블리자드 개발팀은 “게이머들이 장기적으로 노력하도록 의도적으로 만든것”이라고 응수했다. 그런데 이 아이템이 나온 뒤 단 이틀만에 한국의 이름 모를 게이머가 무쇠결속 망령군마를 타면서 블리자드는 물론 해외 게이머들을 놀라게 했다. 신의 경지에 오른 한국게이머들의 저력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2001년부터 e스포츠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온 영국의 e스포츠 전문가 던칸 쉴드(필명 쏘린)는 “한국 선수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근면성실해서 안 좋은환경에 놓이거나 지원이 없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며 “코칭스태프가 최고의 선수에게 플레이를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더라도 이를 수용하는것이 서구 선수와의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쉴드는 또 “이런 점 때문에 한국 선수들이 어떤 e스포츠 종목에 헌신적으로 몰입할 경우 스타크래프트나 리그 오브레전드처럼 그 종목을 지배할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쯤되면 프로게이머가 대한민국 아이들에게 선망의 직업군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프로게이머가 유망하더라도 내 아이의 직업으로 삼을만큼 안정적인지는 다른 문제일 수 있다. 기본적으로 게임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즉 로게이머가안정적인 수입을 거두기 위해서는 게임으로 승부를 가리고 상금을 탈 수 있는 ‘리그’가 많아야 한다.


1998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출시한 ‘스타크래프트’는 e스포츠의 원형이 된 게임이다.


e스포츠가 막 태동한 스타크래프트 시절만 해도 리그는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PC방을 중심으로 소규모 대회가 잇따라 열리고 이게 규모가 커지는 식이었다. 게임방송 온게임넷이 10년 넘게 운영·중계한 스타크래프트 리그인 ‘스타 리그’가 대표적이다. 스타리그를 통해 임요환 같은 걸출한 프로게이머가 나왔고, 이들을 모아 운영하는 프로게임단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에 선수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코칭 스태프, 공정하게 승부를 관리·감독하는  심판, 경기 자료를 분석해 중계하는 캐스터 등 새로운 직업군들이 파생됐다.


스타 리그가 흥행하자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들은 게임유저로 연결될 수 있는 팬들을 확보하기 위해 이벤트성 리그를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회적으로 열리는 리그 구조에서 프로게이머들은 고용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었다. 프로게이머들이 해당 종목으로 겨룰 큰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실력있는 게이머들이 리그에 참여하지 않으면 팬을 확보하겠다는 당초 계획도 수포가 된다. 이에 게임사들은 4개월에 걸쳐 연간 두세 차례 정규 리그를 개최하는 식으로 발빠르게 대응하였다. 100명의 플레이어가 단 한명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플레이어 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게임 흥행에 힘입어 정규 리그를 준비하고 있는 펍지 관계자가 “팬덤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프로게이머들에게 리그 수익을 배분하는 식으로 동기부여에 나설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구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국제적인 게임 흥행에 성공한 ‘플레이어 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는 정규 리그를 준비하고 있다.


게임사들은 한발 더 나아가 리그를 단순히 마케팅 도구가 아닌, 별도의 거대한 수익원으로 보기 시작했다. 게임 전문 시장조사기관인 뉴주(NEW ZOO)에따르면, 올해 e스포츠 시장 규모는 9억 600만 달러(약1조원)로 지난해 보다 38.2% 성장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e스포츠시장이 2022년 30억달러(약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프로게이머의 콘텐츠를 수익화해 주는 ‘e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도 생겨났다. ‘콩두컴퍼니’라는 이 회사는 주요 종목별 프로게임단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소속 선수들의 브랜드 가치를 활용해 부가 수익을 올리는 사업까지 뛰어들고 있다. 프로게이머들이 진행하는 개인방송의 콘텐츠 기획과 유통, 광고 연결 등을 맡는 식이다. 최근에는 프로게이머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개인방송을 병행해 은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돈을벌 수 있도록 브랜드 가치를 미리 만들어 놓는 경우가 늘고있다.

 

한 전직 프로게이머는 “스타크래프트 같은 종목프로게이머가 인기 종목인‘리그오브레전드’로 갈아타는 것은 축구선수가 야구선수로 변신하는 것만큼 어렵다. 예전에는 은퇴하면 코칭스태프로 넘어가는 것 외에 별다른 수익이 없어 막막했다”며 “하지만 현직 프로게이머가 개인방송으로 부가 수익을 올리는 흐름이 최근 1년 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리그 상금 외에도 다양한 수익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선망의 직업은 단순히 고용안정성이나 놀라운 수익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요소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이제 동경의 대상이었던 프로게이머에 새롭게 명예라는 새로운 별을 달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프로게임단 소속 게이머로 태극 마크를 달 수 있게 된것이다.


그렇다면 e스포츠 태극전사는 어떻게 선발될까? 종목별로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는 한국e스포츠협회 등록 선수여야 하며, 이 중에서도 상위권의 실력자로 인정받는 게 가장 기본이라고 한다.


라이엇 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는 이번 아시아게임에서 e스포츠 시범종목 중 하나로 채택되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경우 5대 5로 팀 간 승부를겨루는 리그오브레전드는 축구와 비슷한 차출 방식을 택했다. 협회와 각 프로게임단 사무국이 기술위원회를 꾸려 감독과 코치를 결정하면, 이들 코칭스태프가 포지션별 선수를 각 게임단에서 지목하는 것이다. 각 게임단은 이같은 최종 의사결정에 따라 선수를 파견해야 한다. ‘스타크래프트2’‘클래시로얄’같은 개별 게임의 경우 기술위원회가 게임 개발사와 함께 선발전 방식을 정한다. 주로 상위권 선수들만 추려서 토너먼트대회를 치르는 식이다.

 

김철학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총장“과거에는 프로게이머만 협회에 선수 등록할 수 있었는데, 연내 동호인과 아마추어도 선수로 등록할 수 있도록할 것”이라며 “동호인 내지는 아마추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꾸준히 협회에서 진행하는 대회에 참여해 기량을 인정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저변의 확대는 아시안게임 및 올림픽 게임으로의 진출과 함께 e스포츠의 미래를 담보하고 게이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